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다산학 다산학 제17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45 - 93 (4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여유당전서』발간을 전후한 시기에 안재홍·정인보·최익한의 다산연구를 고찰해 본 것이다. 이 세 사람은 교유에 있어서도 상호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정인보가 있었다. 1930년대 다산 연구의 핵심인물이었던 안재홍·정인보·최익한 가운데에서도 인적 학문적 교류의 중심인물은 정인보였다. 세 사람의 학문적 교류를 활발하게 맺어준 통로는『여유당전서』였다. 1930년대 안재홍·정인보·최익한은『여유당전서』를 통하여 교류하며 다산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공유할 수 있었다. 초기 다산 연구에서는 이 세 사람의 공적을 잊을 수 없다. 안재홍과 최익한은 모두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교 정경학부에서 공부를 함으로써 서양학문의 세례를 충분히 받았으며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정인보는 이건창의 제자로 들어가 조선 지식인의 전통-그 가운데에서도 양명학의 전통을 습득하였다. 이러한 세 사람의 학문적 배경의 상이점은 다산 이해와 해석에서도 차이점을 드러내었다. 반면에 안재홍·정인보·최익한은 다산과 마찬가지로 사상가로서 유사한 경험을 상당히 많이 공유하고 있다. 곧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체험 오랜 기간의 강제된 유폐 생활 고독한 사색과 독서 국가 운명에 대한 위기감과 좌절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 민족사에 대한 책임의식 민중들에 대한 애정 등은 안재홍·정인보·최익한이 시대를 뛰어넘어 다산과 온 몸으로 만나는 공유 의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이『여유당전서』의 저술과 감수 그리고 연구를 가능하게 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