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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어문논집 제62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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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횡청류의 형성 기반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17세기 이전에 창작된 사설시조와 만횡청류의 관계를 살폈다. 사설시조의 사대부 창작 향유설의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는 조선 전기 사설시조는 5명의 사대부에 의해 14수의 작품이 창작되어 전하지만 이 중 만횡청류로 유입된 것은 단 한 수 뿐이었다. 즉 조선 전기 사설시조가 만횡청류의 형성 기반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음, 음악적인 면에서 만횡과 만횡청류의 관계를 살폈는데, 악곡 만횡을 기반으로 만횡청류가 형성되었다기 보다는 만횡청류가 만횡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였다. 그리고 『청구영언』(진본)의 기록을 통해 볼 때, 김천택을 비롯한 당대인들은 일관되게 가집 내에 명공석사가 지은 것과 여항가요라는 두 부류의 작품군이 있다고 하였다. 작품의 성격상 전자는 평시조를, 후자는 만횡청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만횡청류는 그 형성 기반을 여항가요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항가요를 여항인의 노래라고 할 때 여항인은 중인층을 포함하여 그 아래 계층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여항가요는 일반 민요와 달리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도시적 시정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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