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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2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83 - 20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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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에스노센트림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그 단서를 모색하려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로 편입된 오키나와는 ‘오키나와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 위기를 맞았고, 일본은 새로운 지역을 획득함으로서 ‘새로운 국민국가 정체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피식민자였던 이하 후유는 오키나와학을 구축하였고, 지배자측의 야나기타 구니오는 일본민족의 형성 루트를 재조명하게 되었다. 이하 후유는 야나기타 구니오의 권유로 『오모로사우시(おもろさうし)』를 연구하게 되고, 그 결과물로서 오키나와의 『고류큐의 정치』라는 저서를 간행하였다. 이하 후유는 오키나와가 폐번치현에 의해 일본제국으로 ‘동화’의 물결이 밀려오자, 오키나와의 새로운 정체성 회복을 위해, 고류큐에 관심을 집중했고, 일본과의 관련을 중시하는 ‘일류동조론(日琉同祖論)’을 주창하게 된다. 동시에 야나기타 구니오는 일본민족의 루트를 규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오키나와’를 조사하고, 오키나와를 일본민족과 동일한 조상이라는 ‘일류동조론’에 찬성하게 된다. 야나기타는 오키나와 자체에 관심을 갖고 오키나와의 고대를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민족의 ‘루트’로서의 ‘원일본인’의 자화상을 그려내려는 입장이었다. 후유와 야나기타는 동시에 ‘원루트’를 찾아내야 한다는 정체성의 위기적 상황속에서, 자신들의 원형을 재구성하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그것은 ‘일본과 류큐가 동일조상’이라는 공통적 ‘인식’하에 오키나와인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체현’해 낸 오키나와학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후유와 야나기타는 ‘국민국가’의 민족형성론을 구축한 ‘이데올로기스트’였다. 그런데, 이하 후유는 『고류큐의 정치』에서 오키나와 인종이 북쪽에서 남으로 이동했다는 남진론을 주장했고, 야나기타는 오키나와 인종이 남쪽에서 이동하여 북상했다는 북진론을 주장하면서 대립하게 되었다. 또한 오키나와의 기코에 오호기미(聞得大君)를 신관의 대표로 설정하면서, 오키나와의 국학으로서의 ‘오키나와학’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야나기타는 노로 즉 신관의 존재를 통해서 고대일본의 제정일치시대의 모습을 가시화시키고, 오키나와 신도와 일본 신도의 동일성을 찾아냈고 일본의 과거를 체현해 냈다. 결과적으로 이하 후유와 야나기타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오키나와에 관심을 가졌고, 오키나와의 과거를 재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키나와라는 텍스트를 통해, 이하 후유는 일본이라는 네이션(nation)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일본민족과는 차이화를 가진 ‘오키나와 국학’을 찾아내는데 개입했고, 야나기타는 국민국가의 구성 멤버인 국민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내기 위한 ‘오키나와 신도’를 설명해냈던 것이다. 국가 내부에서 형성한 ‘민족 기원 해석’에서 이하 후유는 오키나와인이라는 입장에서 공공의 ‘국학’을 구축했다는 입장이었고, 야나기타는 일본인입장에서 발견해낸 원고향 오키나와의 구축이었지만, 양쪽은 모두 각각의 입장이 중심이 된다는 에스노센트리즘에 빠질 ‘이중의식’이 함축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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