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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효선 (강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28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21 - 34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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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일이나 물건이 어떤 표준 밑에 서로 맞닿은 자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집단사이의 측면에서 본다면 폐쇄적·개방적 기능과 새로운 교통로의 형성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서 행해지는 의례는 곧 사회적·문화적 합의에 의한 상징적 의미와 효력을 지니는 행위체계로 간주된다. 따라서 ‘경계제사’는 네트워크의 개설이라는 관점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것들을 막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지역’으로 의미 짓을 수 있다. ‘경계제사’의 제장으로는 3산·四城門祭·四城門祭를 비롯하여 연안항로상의 항구인 영암 월출산과 완도의 청해진을 들 수 있다. 四城門祭는 대정문, 토산양문, 습비문, 왕후제문에서 지내던 제사로, 왕성의 사대정문에서 행하는 제사이다. 四大道祭는 4개의 큰 길에 대한 제사인 路祭이다. 당의 경우 國門에서 발제를 올리는 의례와 통과하는 산천에 고하는 의례 등이 있는데, 전자는 국문을 나올 때 道祖神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이는 일본의 道饗祭와 유사한 성격의 의례로, 다른 곳으로부터 온 이방인과 다른 곳으로 나가는 신라인의 안위를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대사회에서 바다를 통한 교류는 정치·경제·문화뿐만 아니라 신앙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때 바다에서 각종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나 행위가 행해졌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영암 월출산과 완도 청해진 제사유적을 들 수 있다. 이 두 유적은 『삼국사기』32 잡지1 제사조에 각각 소사와 중사로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서남해안의 주요 항구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제장은 京都의 坊里名 정비와 관도의 개설, 해상교류의 활발한 활동과의 관계를 상정할 수 있다. 즉 ‘경계제사’를 중앙과 지방의 제사 구조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는통일 이후 고구려 및 백제의 명산대천을 신라의 제장으로 편입시켰고, 이 과정에서 ‘경계제사’를 비롯한 제사의 확대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사에 관한 모든 일을 중앙에서 관장할 수는 없으며, 지방에서 행해진 제사는 그 해당 지방에서 충당하였다. 그 일환으로 예부에 속했던 전사서를 성덕왕 12년에 분리시켰는데, 이는 신라에서 제사의식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4년 뒤인 성덕왕 16년에는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新宮을 설치하고 있다. 특히 성덕왕대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중국과의 외교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총 44회에 달하는 왕래가 있었고, 사신의 왕래에 수반되는 ‘경계제사’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숙위한 인물들은 아찬 金守忠을 비롯하여 왕제나 왕질·왕족·왕제 등이며, 귀국 후 군주를 비롯하여 시중이나 상대등 등의 재상급 관직에 진출하고 있다. 신라는 통일을 전후하여 36명 정도의 재상급들이 존재했었고, 이들은 외국으로 대외업무를 위해 갈 때 거쳐야 하는 ‘경계제사’를 주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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