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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시가문학회 한국시가문화연구 한국시가문화연구 제26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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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천택과 교유한 인물이 『청진』 편찬 과정에 미친 영향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김천택은 안동 김문, 노론의 인사들과 교유하였고, 이 교유를 통해 많은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철이 서인의 영수였으며 서인이 노론의 계보을 잇는다는 면에서 볼 때, 안동 김문과 교유 덕분에 『송강가사』를 접하기에 용이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김광욱, 신흠, 조존성의 경우 이 세 사람의 교유가 확인되며, 김광욱과 김성최가 혈연지간이며, 김성최가 김천택과 교유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세 사람의 작품은 김성최를 통해 김천택에게 수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낭원군 이간의 경우 『영언』이라는 개인 가집을 가지고 있었고, 김천택이 이를 접한 후 30수의 작품과 이하조의 발문을 수록한 것으로 보았다. 김천택이 『영언』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낭원군과 같은 왕실 인사이며 『청진』의 발문을 쓴 이정섭을 통해 가능했을 것이며, 이하조와 친분이 있었던 김창업을 통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이들은 당대 상층 사대부라는 공통점을 갖기에 낭원군의 작품이 수록된 것 역시 김천택과 안동 김문과의 교유라는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윤선도의 경우 노론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남인이었기에 『고산유고』를 접하기 어려웠거나, 접하였더라도 수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았다. 반면 『청진』에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들어 있으되, 이이의 <고산구곡가>가 전하지 않는 것은 앞서 설명한 노론의 입장과 상치되는 데, 이는 두 노래의 전승 양상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도산십이곡>은 일찍부터 판각되어 널리 유포되었으나, <고산구곡가>는 김천택 당대에 노래가 아니라 시화첩의 일부로 전해졌기에 수록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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