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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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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漢文學報 제21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445 - 47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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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추재의 竹枝詞類의 창작 경위와 목적, 그리고 그것이 당시 문단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경향을 띠는가에 대해 소략하게 논한 것이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의 작품을 연구함에 있어 죽지사류의 파악과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조선 후기의 걸출한 한시작가로서 그의 문학작품 대부분이 詩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竹枝詞에도 특장이 있어 「外夷竹枝詞」, 「海甸竹枝詞」, 「上元竹枝詞」 등과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竹枝調 로 쓰여진 「高麗宮詞」를 남기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은 지식인들 세계에서 괄목할만하게 그 양이 팽창한 지식정보들을 기록하고 활용하는데 百科全書식 기록 방식이나 箚記體 양식 등이 선호를 받게 된 시기이다. 하지만 추재는 당시의 시정 풍속을 「紀異」라는 小傳과 漢詩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양식으로 그려내었고, 異域에 대한 관심사는 「外夷竹枝詞」로 남겼다. 6차례에 걸친 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燕京의 풍정은 「海甸竹枝詞」로 그려내었고 심양문안사의 종사로 갔을 때는 「瀋陽雜詠」, 「瀋河雜詠」이라는 죽지사류의 형식으로 해당 지역의 정보와 기록을 대신하였다. 필자는 추재를 연구하면서 그가 상당한 필력의 소지자였음에도 그의 燕行體驗이나 그가 거쳐 간 공간과 인물에 대한 관심 등을 왜 산문이 아닌 ‘시’로서 표현하였는가에 대해 의문이 일었으며, 본 논문을 쓰게 된 동기도 여기서 출발한다. 추재가 이렇게 다수의 죽지사류를 창작했던 이유는 당대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와, 기속에의 욕구․연행이라는 독특한 행력이 겹쳐진데 있다. 또한 당시 竹枝詞 창작의 경향성에 있어, 中國의 죽지사의 흐름과 변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추재의 작품 역시 이러한 궤를 함께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감안했을때, 필자의 管見으로는 추재가 한시 작품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면서도 정보 전달이라는 당시 시대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형식이 죽지사류라 인식했던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연구가 一淺하여 추재가 죽지사류의 작품들을 창작하게 된 궤적을 살피느라 작품 개개의 精緻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후일 동시대 문인들의 죽지사류 작품과 함께 견주어 면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때문에 본고는 추재의 죽지사류 작품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데 있어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여겨,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 무게감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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