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화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1집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541 - 582 (42page)
DOI
10.52271/PKHS.2021.12.121.54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명말 은유입량은 2억4천만냥, 아편전쟁 이전까지의 청대 순수 은유입량은 2억 5천만냥으로서 거의 비슷한 액수가 유입되었다. 지역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對일본 무역은 명말 54%의 수준에서 12%로 급감하고, 갈레온 무역의 비중은 23%에서 44%로 늘었으며, 유럽과의 무역 비중은 명말 4%에서 21%로 증가하였다. 즉 명말에는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무역이 중심이 되었지만, 청대에는 유럽과의 비중이 훨씬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청조는 명조와는 달리 동전 발행을 매우 중시하였고, 은과 동전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다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발행량도 은유입액보다 2배 정도 많았다.
여기에 정부가 발행한 동전 이외에도 사주전이 다량으로 유통되었다. 이 동전의 다량 유통이야 말로 청대 물가 변동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되며, 가경연간부터 시작된 ‘은귀전천’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광연간에 일어난 은전비가 불균형의 문제는 단순히 은유출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청조의 동전 발행액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명말에는 막대한 은유입과는 대조적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동전만이 유통되어 이것이 사회적 유동성을 불러 왔다면, 청조의 경제 정책은 동전의 안정적인 공급에 역점을 두었다. 천계령 등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동전이 공급되었고 이것이 도시지역뿐만 아니라, 市鎭 등의 지역 농촌시장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정책 역시 약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지역 주전국에서 얼마만큼의 통화를 주조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파악이 부족한 현실이었고, 때문에 시장에 통화량이 과잉된 상태였을 때 적절히 동전 공급을 줄이는 정책을 펴지 않았다. 그 덕분에 가경연간부터 점차 동전의 가격이 싸지고 은의 가격이 비싸지는 ‘은귀전천’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명말 은유입과 동전 주조량 추계
Ⅲ. 청대 전중기 은유입 추계
Ⅳ. 청대 전중기 동전 주조량 추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