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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고고학회 영남고고학 영남고고학 제70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06 - 141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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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시대 후기 韓 사회에 목곽묘가 수용된다. 목곽의 출현은 단지 고분구조의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장의례의 관념과 전통의 커다란 전환을 의미하며 특히 음식봉헌의례에서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 목곽의 의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 신석기시대 만기이다. 西漢 시기에 매우 현실화된 음식 봉헌의례가 성립하는데 이것이 낙랑을경유하여 한 사회에 수용된 이래 자체적인 발전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논문에서는 목곽묘의 토기부장양상을 통해 음식봉헌의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저장제사와 성찬제사, 두 가지로 개념화하였다. 최초의 목곽묘 도입기에는 음식 봉 헌의례가 전 시대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중서부지방에서는 주구목곽묘가 출현하는 단계에, 진한지역에서는 주부곽식 목곽묘가 등장하면서 나름대로의 음식봉헌의례가 정식화된다. 주구토광묘에서는 상징적인 저장제사가 강조되었고, 경주 일원의 주부곽식 목곽묘에서는 주곽의 저장제사와 부곽의 성찬제사로 분화되었다. 이러한 음식봉헌의례는시간이 지나면서 변해 가는데 경주 일원의 목곽묘에서는 4세기대의 다양한 변형을 거쳐 5세기 전반의 신라식 토기제사법이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음식봉헌의 매장의례가 발전하면서 토기양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3세기 후반의 목곽묘 음식 봉헌의례를 위해 장식성이 강한 성찬 및 저장용 와질토기가 준비되었듯이 5세기 전반에는 의례용 토기의 각 기종을 중심으로 신라토기양식이 성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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