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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경호 (서울역사편찬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67 - 86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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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후 발생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외국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조선주재 미국인들 또한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를 하려고 했으며, 이를 국제사회에알리려고 부단히 애썼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명성황후 주위에는 미국인 군사고문관 다이를 비롯하여 많은 미국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명성황후를 미국공사관으로옮겨 보호하려고 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하고 고종은 청일전쟁 직전에도 그랬듯 다시 한번 경복궁 밖을 탈출하려는 계획을세우게 된다. 이른바 춘생문사건이다. 일부 개설서와 논문에서는 고종이 미국 공사관으로 갈 것으로 보고, 춘생문사건과美館播遷을 혼용하여 쓰고 있는데 사실 고종이 궁궐 밖으로 탈출하여 어떤 공사관으로 가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춘생문사건 당시 미국공사관이 하루 종일 열려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미 국무부문서와 각종 회고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대거 이 사건에 참여하고친미파들이 망명하려고 시도했던 점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 가려고 했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기록에서는 밝혀지지가 않았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춘생문 사건 당시 미국은 조선에 간섭하지 않다가 일본의손을 들어 일본이 행했던 일들이 합법적이었다고 평하였다. 이는 먼로주의를 내세워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불개입주의를 강조하던 외교정책이 이중성을 띄고 있다는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사회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리려던 미국인들도 미국의 지시에 따라 곧 그들의 의지를 철회하여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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