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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거룡 (선문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동아시아불교문화 동아시아불교문화 제36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641 - 67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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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파사석탑(婆娑石塔)의 유래와 조성과정을 규명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금관성파사석탑조에는 파사석탑의 유래가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금관(김해)에 있는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삼국유사』 편찬 당시 파사석탑이 호계사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뿐이며, 허황옥의 가락국도래 이후, 호계사 안치 이전까지 400여 년 동안 파사석탑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파사석탑의 소재나 성격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으며, 이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호계사 이후 파사석탑의 내력도 분명하지 않다. 파사석탑이 본래부터 불탑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파사석탑이 불탑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는 그 탑신에 조성된 사리공(舍利孔)이라 할 수 있지만, 파사석탑의 사리공은 『삼국유사』 편찬 이후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허왕후릉 앞 파사석탑의 외양으로 볼 때, 6세기 이후 후대의 힌두교 사원건축 중에서 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남인도 마하발리뿌람(Mahabalipulam)의 해양사원이다. 그러나 해양사원의 석재는 화강암인 반면에 파사석탑의 석재는 탄산염 각력암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또한 해양사원과는 달리 파사석탑은 비보탑(裨補塔風)의 성격을 지닌다. 파사석탑의 유래는 허황옥의 출자문제와 관련되며, 따라서 김병모의 ‘보주(普州) 경유설’은 파사석탑의 유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주 서운향(瑞雲鄕)의 신정기(神井紀)에는 “허녀황옥”(許女黃玉)이라는 명문이 있으며, 만일 신정기의 허녀황옥과 『삼국유사』의 허황옥이 동일인이라면 파사석탑은 보주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다층탑의 조성시기를 고려할 때, 보주 또는 중국의 탑파양식에서 파사석탑의 시원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파사석탑의 돌(石)이 허황옥과 함께 보주에서 가락국으로 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A.D.48년 전후 인도에서 파사석탑의 사리공과 같은 사리장엄의 예는 없으며, 파사석탑의 사리공은 『삼국유사』 편찬 이후 우리나라에서 조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만일 파사석탑의 사리공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조성 시기는 정림사지오층탑이 만들어진 이후, 즉 7세기 초반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파사석탑에 조성된 사리공은 불탑이 아니라 부도(浮屠)의 사리장엄방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파사석탑의 사리공은 9세기부터 널리 성행한 부도의 사리공과 유사하다. 특히 조선 전기 이후에 조성된 원구형부도의 사리공은 원형 개구부의 사리공을 조성한 점에서 파사석탑의 사리공과 일치한다. 또한 이 둘에는 덮개 역할을 하는 막사발모양 공간의 지름이 사리공 개구부에 비하여 지나치게 크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파사석탑의 사리공은 조선 전기 이후, 원구형부도의 사리장엄양식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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