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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한림일본학 제3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8 - 32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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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시기(戰時期) 일본 기획원에서 입안한 국토계획에 대한 여러 계획안 중 식민지조선에 대해 산업배치와 인구배치를 어떻게 기획하고 있었는가를 밝힘으로써 대일본제국의 본국정부가 조선을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국토계획은 계획기간을 15년으로 잡은 장기계획이며, 실제로는 기획원 내의 검토로 그쳤으나, 정부에 대해 답신(答申)을 한 대동아건설심의회의 수치목표와 일치시키는 등 정부 내에서 참고로 한 내용이기도 하였다. 국토계획은 공업과 농업, 그리고 인구문제 등 여러 정책을 통합할 목적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농공업의 생산목표와 공업배치만이 중시되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서북 조선의 중화학공업개발에 대해서는 실제로 전개되던 북부의 전력개발을 참고로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일본 내지 공업에 대한 보완을 내지 자본으로 시행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철강과 석탄 등의 광공업의 생산목표는 당시 생산량에 비하면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예를 들면 철강은 300만 톤이라는 목표가 설정되었으나, 당시 생산량이 41만 톤(1941년)에 불과했다. 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로, 그 대표적인 예라하겠다. 농업생산 중 특히 미곡의 목표량은 내지에 이송하는 물량도 확보 가능한 3240만석이라는당시 총독부 증산계획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농업생의 증대에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 내지, 만주에서 광공업 부문에 공급되는 노동력의 원천은 조선의 농촌에서 종사하는 농민들이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농업 재편성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구체적이지 못했다. 인구배치도 공업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수치만 제시될 뿐, 농가의 가구 수와 그 가구 당 필요한 경작면적의 적정규모 등 농공(農工) 조정에 필요한 근거가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조정이야 말로 증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실제로는정부의 공출(供出)에 의해 농촌에서 노동력이 빠져나가 미곡생산이 감소하였다. 국토계획에서 조선에 대해서는 장래적인 관점에서 산업배분계획에 의해 중공업화가 중시되어, 조선이 제국일본의 내지를 보완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공 조정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조선인에 대한 구체적인이동계획은 제시되지 않는 등 내지에 대한 계획보다 명확하지 못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내지인’ 배치에 대한 수치는 명확하게 명시되어, ‘지배민족’으로서의 ‘내지인’ 즉 ‘야마토민족’ 의 ‘지도성’이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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