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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장근 (군산대학교)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57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 - 25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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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사이 진안고원 내 장수군에 지역적인 기반은 둔 장수가야는 4세기 후반경 등장해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하다가 6세기 초엽경 백제에 복속되었다.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백제의 동쪽 진출을 막았고, 사통팔달했던 내륙교통망의 장악, 대규모 구리와 철산개발, 한성기 백제의 간선교통로가 통과하지 않는 지정학적인 이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장수 동촌리 말무덤이 계기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200여 기의 가야계중대형 고총이 진안고원의 장수군에만 조영되었다. 장수 동촌리 가야계 고총에서 처음으로 말발굽이 나와 장수가야가 철의 생산부터 주조기술까지 응축된 당시에 철의 테크노밸리였음이 입증되었다. 금강 상류지역에서 가야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수가야는 한마디로 70여 개소의 제철유적을 남긴 철의 제국이자 80여 개소의 봉수로 상징되는 봉수왕국이다. 동시에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에서 유일하게 가야문화를 꽃피웠던 가야계 소국이다. 가야계 왕국으로 장수가야의 발전상과 삼국의 각축장으로 진안고원이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장수 남양리부터 장수가야를 거쳐 후백제까지 대규모 철산개발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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