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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도영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107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2 - 123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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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대장식구를 분석하여 그 전개 과정을 명확히 하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6세기 중엽 이전 신라에는 용문투조대장식구, 초엽문대장식구, 역심엽형대장식구 등 다양한 종류의 대장식구가 존재하였다. 각 부품의 선후관계를 예상하고 병행관계를 분석한 결과신라의 대장식구를 I~VI期로 나눌 수 있다. I期는 삼연과 고구려로부터 대장식구 문화를 수용한 후 자체적으로 대장식구를 제작하는 시기이다. 전진으로 견사,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고구려 남정으로 볼 때 당시 신라가 고구려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에 대장식구 문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계기는 삼연 및 고구려와 이루어진 대외 교섭이었다. II~III期는 신라 대장식구가 성립되며 경주를 중심으로 낙동강 이동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시기이다. 고구려의 군사적 압박을 받고 있던 신라는 5세기 중엽 이후 탈고구려화와 함께 낙동강 이동지역의 간접 지배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대장식구가 분포하게 되었을 것이다. IV~V期는 경주를 중심으로 대장식구의 장식성이 증가하고 다양한 형식의 대장식구가 제작되는 시기이다. 동시에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대장식구를 제작하며 백제와 가야, 왜로 신라의 대장식구가 이입되기도 한다. 금공품을 매개로 한 각 국의 교류는 이 시기에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VI期는 초엽문대장식구가 쇠퇴하고 누암리형대장식구, 철 및 청동제 대장식구가 출현하는 시기이다. 대장식구의 변화는 지증왕5년(504) 시행된 상복법의 시행, 그리고 법흥왕7년(520)에 반포한 율령 및새롭게 제정된 복식제도와 관련이 있다. 이후 신라에는 교구, 과판, 대선금구를 동으로 주조한 황룡사형대장식구가 등장한다. 7세기 후반부터는 당식 대장식구를 받아들여 통일신라 이후에도 대장식구 문화는 지속된다. 통일신라시대 대장식구는마립간기 대장식구와 달리 관복으로써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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