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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기주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시가문학회 한국시가문화연구 한국시가문화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95 - 21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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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하고 벽이 없이 지은 집인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누정의 창건은 퇴사나 낙향한 선비들이 노년을 한가롭게 지내기 위한 장소로 또는 그들을 위해 문중이나 제자, 친지들이 창건하거나 초야에 묻힌 선비가 혼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은일공간으로 창건하였다. 그러나 이 누정의 공간은 개인만이 아니라, 향리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매김했던 것도 사실이다. 산재한 많은 누정 중에서 송흠(宋欽)과 오응석(吳應錫)의 ‘관수정(觀水亭)’ 자료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 하면 송흠의 경우는 환로에 나갔다 낙향한 조사(朝士)이고 오응석은 향리에 머물면서 은일자적인 자세로 살았던 처사(處士)이다. 또한 두 사람의 누정의 전승과 계승의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문서자료가 현존한다. 두 누정은 오늘날에도 전남 장성군과 광주시 광산구에 소재하지만 거리가 40여리 정도로 매우 가깝다. 후인들의 차운시는 두 사람의 지위와 관련하여 이미지화가 다르게 나타났다. 송흠의 경우는 金安國 등 동료나 梁彭孫 朴祐 등 제자 그리고 吳謙 金麟厚 등 후인들의 시에서 그의 고매한 인품의 경모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아들 宋益憬은 더 나아가 ‘관수정’에 아버지를 투사하여 가훈으로 마음에 새기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모든 이가 송흠이 관수정에 낙향하여 삶았던 모습을 경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이러한 기록이 『知止堂遺稿』에 전해지고 있다. 오응석의 경우는 처사로서의 존귀한 인품과 학덕을 선양하려 하였다. 향리의 후학들은 관수정을 선계로 그리고 은일자로의 고고한 삶을 영위했던 삶을 선양하였다. 문중의 후손 吳相華 吳邦善 吳潤善 吳泰洙 吳亨洙 吳甲洙 吳旺根 등은 할아버지의 깨끗한 인품을 더더욱 선양하였다. 이러한 선양을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錦城世稿』를 발간하였으며 1992년 광주직할시에서 발행한 『樓亭題詠』에 등재하기도 하였다. 결국 두 누정의 주인에 대한 차운시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선현의 칭송인 선조나 스승에 대한 찬미와 효사상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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