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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종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1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85 - 42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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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87년 6월항쟁의 마스터 프레임이었던 ‘개헌’프레임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6월항쟁을 촉발시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목적을 갖는다. 개헌에 대한 전두환정권 및 여당세력의 입장은 ‘개헌론’과 ‘호헌론’ 사이에서 진동했는데 그것은 대중동원을 촉발시키거나 소강기에 머물게 하는 정치적 기회구조가 되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개헌프레임을 처음 제기한 신민당의 주류 민추협세력은 개헌프레임을 1987년 6월항쟁 발생시기까지 상대적으로 일관되게 밀고나감으로써 개헌프레임의 주창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980년대 광주항쟁 등의 영향으로 이념적으로 급진화되어 있었던 사회운동세력은 신민당의 개헌프레임을 급진화하고자 시도했으나 1986년 5월 3일 인천대회의 ‘실패’ 이후 결국 야당의 개헌프레임을 수용하는 변화과정을 거친다. 개헌프레임으로 수렴된 야당과 사회운동세력은 1987년 5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할 수 있었고 국민운동본부는 6월항쟁의 지도부로 기여할 수 있었다. 이상의 논의는 민추협-신민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야당이 개헌운동 및 6월항쟁의 한 주체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마스터 프레임으로서 개헌프레임이 갖는 자체적인 대규모 대중동원력에 주목하도록 한다. 개헌프레임은 야당에 의해 제기되기는 했으나 대중 그 스스로에 의해 ‘선택’된 프레임이었으며 그것은 당시 일반시민들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 정도를 염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회운동세력은 분산적으로 진행되던 대중저항을 전국적인 집합행동으로 결집시켜내는 조직가로서 역할했음을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사회운동 프레임으로서 개헌에 주목했을 때 6월항쟁의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과 그 위상에 대해 보다 더 입체적이며 상대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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