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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용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법과사회이론학회 법과사회 법과사회 제54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39 - 17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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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영국 북미식민지법(British North America Act, 1867년 3월 29일 제정, 7월 1일 시행)이 제정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캐나다 내에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이 법에 따라 현재의 캐나다가 만들어졌다고 보고, 올해 캐나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캐나다는 영국 제국의회가 아니라 자신들이 영국 북미식민지법을 개정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를 수립하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국 북미식민지법에는 캐나다가 스스로 이 법을 개정할 수 있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성문헌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고, 헌법관행에 따라 해결해야 했다. 식민지 시대의 헌법개정 방식에 대한 헌법관행은 다양했다. 영국 제국의회가 단독으로 식민지 헌법을 개정한 경우도 있었고, 캐나다 연방과 주 의회의 동의를 받아 영국 제국의회가 헌법을 개정한 경우도 있었으며, 캐나다 연방의회 단독의 또는 연방의회와 주 의회 일부의 동의를 받아 영국 제국의회가 헌법을 개정한 경우 등이 있었다. 그러나 헌법개정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 문제에 대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는 patriation의 방법을 통하여 1982년 캐나다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캐나다는 1987년의 미치 레이크 합의, 1992년의 샤럿타운 합의, 1995년의 퀘벡주의 분리 독립 국민투표, 1998년의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퀘벡주 분리 독립 판결, 2000년의 Clarity Act 제정, 2001년의 Fundamental Rights Act 제정 등 헌법개정 논쟁의 긴 여정을 거쳤다. 표면적으로는 1982년 캐나다헌법 성립 과정에서 부각된 캐나다의 헌법개정 논쟁의 주요 원인이 1867년 캐나다헌법(영국 북미식민지법)에 캐나다 국내에서의 헌법개정 절차가 없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82년 캐나다헌법 성립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누가 캐나다인이고, 캐나다는 어떠한 국가여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consensus)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상태에서 1982년 캐나다헌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가 오랜 기간 동안 헌법개정 논쟁을 하면서 부각된 주요 헌법쟁점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퀘벡주와 관련된 문제(separatism)이다. 둘째, 선주민들과 관련된 문제이다. 셋째, 퀘벡주 이외 다른 주들(특히 서부 지역(western alienation)과 대서양 지역)과 관련된 문제(regionalism)이다. 넷째, 약자ㆍ소수자ㆍ여성 등과 관련된 문제이다. 캐나다가 이러한 헌법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어느 한쪽의 문화나 제도로 다른 쪽을 동화(assimilation)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서로의 다름(difference)을 인정(recognition)하고 서로 화해(reconciliation)하여 공생(coexistence)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캐나다의 헌정이나 헌법은 다른 국가들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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