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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희 (한신대학교)
저널정보
국립고궁박물관 고궁문화 고궁문화 제1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11 - 13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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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국가의 보장처로 인식되었던 강화부의 행궁 건립과정, 배치와 규모를 고찰하였다. 강화에는 고려시대 대몽항쟁기 이후 이궁離宮과 가궐假闕이 운영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기간 중 강화부 객사 및 관아 일대가 국왕의 임시 편전으로 사용되면서 행궁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강화행궁은 병자호란 당시 화재로 인해 소실된 이후 증개축 과정을 거쳐 1711년(숙종 37) 완공되었다. 특히 행궁 동쪽에는 선대 왕의 어진을 모신 영전이 들어서고 정조대에는 외규장각이 새롭게 설치되면서 행궁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1855년(철종 6)에는 행궁 42칸 외에 척천정, 세심재, 북신고 등을 포함해 총 146칸의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 이후 1881년(고종 18)에 간행된 『강화부궁전고』에 의해 행궁 85칸, 외규장각 20칸, 북신고와 제기고를 포함한 장녕전 94칸, 봉선전 9칸, 만녕전 22칸 등 총 230여칸의 규모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강화행궁의 모습은 19세기 중반 간행된 《강화부궁전도》를 통해 알 수 있다. 강화행궁은 외규장각·장녕전·만녕전·봉선전 등과 함께 줄지어 배치되었고, 그 아래쪽에는 강화부 관아들이 나란히 위치하였다. 하지만 병인양요 당시 화재로 소실된 행궁과 영전은 중건되지 못하였고 현대에 이르러 외규장각만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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