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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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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원회 (공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이근화 (공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저널정보
한국지리학회 한국지리학회지 한국지리학회지 제8권 제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35 - 25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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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안 종교촌은 종교취락, 다종교취락, 풍수지리·풍수도참적 장소성, 1984년 폐쇄로 인한 촌락 소멸, 본래 입지에 대한 접근 불가, 선행연구 결과들 간의 큰 편차 등의 특성을 갖고 있어, 연구의 필요성이 크고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본 연구는 신도안 종교촌에 관한 기존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도안 종교촌의 변천 및 종교구성을 복원 차원에서 파악했다. 신도안 종교촌의 변천은 신도안 종교촌의 발생, 존속, 단속, 폐쇄 및 종교의 이전 등의 측면에서 파악되었다. 신도안 종교촌의 발생 요인으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신도안을 중심으로 한 계룡산의 풍수지리적 특성과 풍수도참적 특성이다. 신도안 종교촌은 1903~1904년경 또는 1912년에 신도안에 시천교가 최초로 유입되고, 이를 계기로 군소영세 신흥종교들이 대거 유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도안 종교촌은 일제강점기 내내 수적 규모를 갖추지 못했으나, 해방 후 1950년대 한국전쟁을 계기로 번성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1백여 개가 넘는 종교가 입지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신도안 종교촌의 종교들은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수차례의 정화운동에 의해 유사종교, 미신 등으로 왜곡되면서 일부가 추방되는 일이 있었다. 신도안 종교촌은 1983년에 고시된 6・20사업에 의해 1984년에 폐쇄되었으며, 이때 무속도 함께 철거되었다. 종교들은 주로 인근 대도시 대전과 인근 중소도시로 이전했으며, 무속은 대부분 계룡산에 최대로 근접한 곳으로 이전했다. 신도안 종교촌의 종교계통구성의 특성 중 가장 현저한 것은 다양한 종교계통의 종교들이 혼재했다는 것이다. 신도안 종교촌에서 개별 종교구성의 주요한 특성은 개별 종교의 고유성 유지 및 개별 종교간 공존, 신흥종교와 정통종교의 혼재, 개별 종교별 소속 종교계통의 불명확성, 시기별 개별 종교 구성수의 상이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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