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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소진형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한국정치연구 한국정치연구 제29권 제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1 - 6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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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7세기 조선의 학자관료들의 왕권규정을 윤휴(尹鑴, 1617~1680)와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 제 5주 황극(皇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에서 황극은 왕의 표준, 기준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특히 명청 교체 이후 17세기 주자학적 토대에서 중화문명을 지키고자 했던 학자 및 관료에게 황극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본 논문은 17세기 황극 개념에 대한 주목은 당쟁만이 아니라 당시 명청교체를 문명의 존속여부와 연결시켜서 생각했던 학자, 관료들이 문명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통치와 왕의 역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전제한다. 여기에서 윤휴와 박세채의 해석을 비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양자 모두 왕권의 강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은 모두 척화론자였고, 왕의 위상에 대한 중요한 학문적·정치적 논쟁인 예송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황극 개념과 관련해서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로 마음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조선후기 영조, 정조 등이 황극과 탕평을 자신들의 정책이나 정치적 방향을 정당화하는 정치수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박세채가 황극 및 황극과 연결되어 있는 붕당, 탕평, 군자, 소인 등 일련의 개념을 왕권과 연관된 정치개념으로 적극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논문은 윤휴와 박세채의 황극 해석을 비교하고 이들이 설명하는 왕의 역할 및 통치의 기능이 무엇인지, 이들이 황극과 마음의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문명의 수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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