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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김재웅 (조선이공대학교) 김윤학 (조선이공대학교)
저널정보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대한건축학회연합논문집 대한건축학회연합논문집 제22권 제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81 - 190 (1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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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광주대교구의 초기 천주교 성당을 중심으로 그 건립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평면과 구조, 공간 구성, 입면 요소 등 건축적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또한 성당의 규모와 Bay의 크기 등 치수계획에 있어 일련의 공통성을 살피고, 나아가 신축에서부터 증축, 개조, 철거에 이르는 변용 현상을 파악하는 등 통시적인 조명을 시도하고자 하였으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광주대교구 초기 성당의 건축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외방전교회 관하의 성당은 벽돌조로 일관되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관하의 것은 벽돌조를 모방한 서양식 목조가 나타나는 특이점을 보인다. 본당을 설립할 때 사제관을 우선하여 건립하였으며 사제관은 모두 벽돌조 양옥으로 지은 반면, 성당은 여건에 따라 우선 서양식 목조로 지어 임시성당으로 쓰고, 이후 벽돌조의 본당을 건립하거나 벽돌조를 모방한 서양식 목조를 지어 본당으로 삼았다. 서양식 목조는 한옥 보다는 근대적이면서 저렴하게 건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호된 것으로 풀이된다. 성당 평면은 Nave와 Aisle의 구별이 없는 강당형이 주를 이루어 당대 보편적인 소규모 성당에 비해 간소하며, 건축면적도 신축 당시 40평~ 91평 크기로 소규모이다. 구조는 벽돌조와 서양식 목조로 대별되고, 당시 부산교구에 비해 그 형식이 다양하지 않으며, 1930년대 후반에 철근콘트리트 구조가 등장한 대구⸱경북과도 차이를 갖는다. 특히 서양식 목조를 철망과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여 벽돌조를 모방한 점은 이 지역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종탑은 전면 중앙에 Narthex로 구성된 것과 전실 없이 종을 매단 간소화된 형태를 보이며, Apse는 북동성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무하다. 천장은 벽돌조는 Barrel vault로, 서양식 목조는 평천장으로 시설하였고, 창호는 반원아치가 주를 이룬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관하인 1930년대에 지어진 성당은 규모설정에 있어 12尺(3.65m)을 모듈로 적용하였다. 측면 Bay의 간격이 12尺이고, 전면 또한 12尺의 두 배수 혹은 세 배수에 해당된다. 벽돌조인 북동성당의 Buttress 간격이 12尺, 서양식 목조인 나주와 장성성당의 측면 아치창의 간격이 12尺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서양식 목조 성당은 치수계획에 있어 벽돌조를 모방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중후반에 소매채가 증축되거나 측면 Bay를 3칸 증축하여 회중석을 키우는 등 성당 규모를 늘리는 현상은 6.25전쟁 후 가톨릭 신자의 급격한 증가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공간 구성에 있어 제의실은 제단의 후면 혹은 제단의 측면에 놓이나, 이후 소매채 혹은 전면 출입구에 가깝게 바뀌는 증축에 따른 변용이 나타나는데, 이는 2차 바티칸 회의 이후 전례의 변화와도 관계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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