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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경아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소설학회 고소설연구 고소설연구 제4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97 - 22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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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20세기 초 사회·문화적 배경을 검토하고 〈장화홍련전〉의 매체 전환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20세기 초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매체들이 유입되는 등 전반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기였다. 〈장화홍련전〉은 이러한 복잡한 시기에 소설, 연극, 영화 등으로 매체 전환이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식민지기에 접어들면서 일제는 언론을 탄압하고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고자 하였다. 『매일신보』는 일본 가정소 설을 번역하여 연재하면서 일본의 신파극(新派劇)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구극(舊劇)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구극은 점차 밀려나고 신파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편, 활동사진이 유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오랜 기간 일본이나 서양에서 수입한 영화만 존재했다. 우리의 힘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1919년에 와서야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제작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장화홍련전>은 가정비극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파극의 레퍼토리로 적용하기에 적합했다. 〈장화홍련전>이 신파극으로 매체 전환에 성공하고 뒤이어 〈사씨남정기〉, 〈심청전〉 등 다양한 고소설이 신파극으로 공연되었다. 1924년에 개봉된 영화 〈장화홍련전〉 은 순수한 조선의 자본과 기술로 제작되었다. 우리의 힘으로 만든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에 '우리의 것'에 굶주려 있던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장화홍련전>은 의도적으로 이식된 문화에 대한 대응성과 새로운 매체를 수용하는 개방성을 바탕으로 매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장화홍련전>의 매체 전환은 ‘우리의 것'을 갈망하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해 주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의 것'을 잃지 않고 우리의 콘텐츠를 가지고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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