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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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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주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99 - 13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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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회는 1905년 10월 27일 설립되었지만, 일제강점 직전 일본적십자사에 흡수되었으며 1910년 8월 강점으로 폐사되었다. 그렇지만 3.1운동 이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국내외에서 일본군과 투쟁하는 독립군의 의료기관으로서의 전상병 구호를 위하여 대한적십자회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부활되었다. “신성한 독립전쟁에 있어서 생명과 신체를 희생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동포를 구호함”을 제1의 중요한 의무로 부활된 대한적십자회가 초기 자리매김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은 초대회장 이희경과 구주위원장으로 활동한 이관용이었다. 대한적십자회 초대회장 이희경은 의사로써 대한적십자회 활동뿐만 아니라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미국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이희경은 민족운동에 참여할 것을 모색하던 중 우선 귀국한 후 3.1운동을 경험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임시의정원 평안도 대표를 비롯하여 군무위원과 군무위원장, 외교차장, 외무총장 대리 등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임시정부의 중요한 단체인 대한적십자회 설립에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대회장으로 적십자회의 기초를 다지는데 기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가 설립 직후 미주로 건너가 한인사회에 적십자회의 설립과 운영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의사와 간호원을 양성하기 위한 의연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미주한인사회에 적십자회 지부를 설립하는 등 조직의 확장과 안정을 도모하였다. 대한적십자회 구주위원장으로 활동한 이관용은 스위스에 유학 중 임시정부 파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리강화회의와 국제사회주의자대회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상정하기 위한 외교활동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국제적십자연맹에 가입과 일본적십자사에 항의서를 제출하는 등 적십자회의 외교활동에 적극 나섰다. 귀국 후에는 교육자로 언론인으로 강연과 교육, 그리고 언론활동을 통해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신간회 설립에 참여하는 한편 이후 간사로 활동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고 학생들이 구속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민중대회를 계획하던 중 일경에 검거되어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는 등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 초대회장 이희경과 구주위원장으로 활동한 이관용은 적십자회 초기 조직을 안정과 확장, 그리고 외교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또는 신간회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족운동에서 적지 않은 활동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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