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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희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음악사학회 한국음악사학보 한국음악사학보 제6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49 - 39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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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기생들은 1913년에 진주예기조합을 설립하였고, 1927년에 진주권 번을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지역유지에 의해 주식회사 진주권번으로 전환 되었다. 본 논문은 진주권번의 설립, 운영, 교육, 공연, 예인, 종목에 대해 연 구하였고, 진주권번은 진주 공연예술의 전통을 계승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진주권번의 의의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주권번은 진주지역 공연예술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시켰다. 국 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경남 무형 문화재 제12호 진주포구락무, 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이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진주권번은 논개를 기리는 ‘의암별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수행했다. 1920년에 진주권번 기생들이 먼저 의기사 중수를 위해 진주지역 에서 발기회를 조직했고, 1927년에 제향을 올리기 시작했다. 의암별제는 진 주 지역민과 진주 기생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셋째, 진주권번은 진주검무라는 소중한 공연예술의 유산을 전승하였다. 진주검무는 의암별제의 의례 과정 중에 헌무(獻舞)로 추어졌기에 진주권번 의 기생들은 반드시 검무를 익히고 춤추었다. 진주검무가 무형문화재로 지 정 당시 기생 출신 예인으로 팔검무가 가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넷째, 진주권번의 기생들은 1919년 진주의 만세운동에 앞장섰고, 진주의 요리옥이나 진주권번의 불합리한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동맹파업을 하기도 했다. 진주권번의 기생들은 기생이라는 처지임에도 수동적이기보다 주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 기생의 지위가 낮았음에도 진주의 공연예술과 문화를 전승한 진주권번의 예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진주권번이 지킨 문화 유 산들은 우리 전체의 문화 유산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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