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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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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윤해동 (한양대학교) 신동광 (광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2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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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과 중국에서 독일식 문화 개념이 수용되는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개념 자체만 보더라도 전통적 한자 개념이나 문명 개념과 그다지구별되지 않고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1차대전 종결 이후 ‘문화주의’ 철학으로정립되기까지 일본에서 문화 개념이 실천적인 문화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의 좌절 이후 독일식 문화 개념이 수용되자 곧 이어신문화운동이라는 실천운동이 전개되었다. 문화주의라는 철학적 바탕이 없는 채로, 구문화와의 투쟁을 슬로건으로 내건 강력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중국은 일본과 달랐다.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수용된 ‘문화론’은 다시 조선의 전통=‘국수(國粹, nationality)’에 대해 주목하게 하였으며, 조선의 개별성에 대한 강조는 민족에 대한 자각을 강화하였다. 병합 이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국수보존운동’은 신문화운동으로서의 성격도 조금 갖고 있었으나 1910년대 국수보존운동이 신문화운동으로발전하지는 못했다. 이는 문명 개념의 지속성 혹은 문화 개념의 혼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광수는 ‘정신적 문명’이라는 형태로 문화 개념의 적극적 수용에 대비하고있었다. 민족자결주의와 개조론의 세계사적 흐름은 조선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3.1독립선언서」로 수렴되었다. 「3.1독립선언서」는 민족자결과 개조론을 잇는 매개가 바로 문화 개념 혹은 문화론이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신문명의 시대 곧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민족자결을 위한 저항권이 용인되는 것이며, 이는 세계 개조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적 연결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3.1독립선언서」는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문화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제친 ‘문화의 권리장전’ 이 되었다. 민족자결주의와 개조론의 사조는 문화론과 결합하여 대단한 폭발력을가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문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요컨대 문화를 위한 투쟁으로서의 3.1운동은 동아시아 차원의 근대의 성격을크게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3.1운동은 이전의 문명론적 위계론에 심각한타격을 주었다. 둘째, 3.1운동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1920년대는 ‘문화의 시대’가되었다. 셋째, 3.1운동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적 차원에서 ‘식민지근대(colonial modern)’의 상호성이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는 윌슨·루스벨트적자유주의 기획을 통하여 2차대전 이후 현대사회를 형성하는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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