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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택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중부고고학회 고고학 고고학 제19권 제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 - 2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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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중기가 되면 복합사회로의 진입을 시사하는 다양한 징후들이 확인된다. 부여 송국리유적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들이 위계적 관계망을 형성하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송국리는 위계망의 최정상에 있는 복합사회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청동기시대 전ㆍ중기의 잉여 산물의 저장 양상 변화, 특히 저장 전문마을의 등장과 관련하여 첨예한 논쟁이 있었으며, 논쟁의 핵심에는 부여 송국리유적이 있었다. 주거지 외부에 설치된 저장수혈을 근거로 잉여 산물이 생산자 개개인의 사적 소유물에서 공공재로 전환되었다는 주장을 펼친 「송국리단계 저장시설의 사회경제적 의미」 측에서는 저장 전문시설의 존재를 상정하고 이를 권력과 사회적 위계 형성의 근거로 인식했다.「호서지역 청동기시대 가구 변화의 사회경제적 의미」측에서는 ‘사회경제적 의미’ 에서 제시한 수치와 주거지 자료에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대한 대응 및 반론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검토 결과, ‘사회경제적 의미’는 분석 결과에 앞서 원자료 처리에서 연구 결과의 신뢰도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오류를 범했음을 밝혔다. 나아가 최근 조사성과를 기반으로 생산 및 소비 행위가 청동기시대 중기 송국리유적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시사했으며, 잉여의 저장 또한 예외 항목으로 간주할 수 없으므로 송국리유적이 소비전문취락이라는 규정은 적절하지 않음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2008년 이후 송국리유적 발굴조사의 성과를 바탕으로 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에 따른 저장행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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