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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호 (국방부)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4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65 - 89 (25page)
DOI
10.17068/lhc.2021.11.2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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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47년 2년에 걸쳐 이루어진 두 차례의 미소공동위원회는 한국문제를 위한 해결에 실패했다.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함께 한국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워싱턴 당국은 대통령 특사를 파견해 이 지역의 정치․경제․군사적 문제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 특사로 선발된 이는 주중미군사령관을 지냈던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 중장이었다. 1947년 7월 9일 트루먼 미 대통령은 공문을 보내 중국 정부가 중국의 본토 회복을 도모하도록 하고, 한국의 경제 원조계획에 관한 상황과 일반 국내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지시했다.
웨드마이어는 8명의 사절단원을 이끌고 1947년 7월 16일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한 달 간의 중국방문을 마친 웨드마이어는 일본을 경유하여 8월 26일 김포 비행장에 들어왔다.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 동안 웨드마이어 사절단은 미군정 당국의 각종 보고서를 접수하고 한국인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나누었으며 불특정 다수의 한국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를 통해 사절단은 미군정 당국과 남한 정치세력의 정세인식과 대응방향, 남한 민중의 시각을 분석할 수 있다. 남한 각 정파의 정부수립구상 및 정치적 현안, 남한 민중의 현실 인식을 중앙과 지방이라는 2중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이들이 체류하는 동안 각계 각층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당시 남한 민중의 시대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신탁통치를 둘러싼 내홍과 미소공위의 위기
3. 웨드마이어사절단의 파견과 임무
4. ‘웨드마이어 장군 전상서’에 나타난 지방인들의 인식과 갈등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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