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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육수화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한국교육사학 제42권 제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83 - 10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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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왕실문화에서 사대부문화로 확장된 조선시대 투호례의 변화양상을 추적해 보고 그 교육적 의미를 구명해 보고자 하는데 목적으로 두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은 향촌사회의 지배와 교화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향음주례와 향사례의 보급을 위해 노력하였고, 『국조오례의』의 완성으로 향음주례와 향사례의 시행은 법제화 되었다. 그러나 향음주례와 향사례의 경우 행례 자체가 너무 번거롭고 거창하여 거행하기 힘들었다. 투호례의 경우 그 의식이 간단하여 행하기가 쉬우면서도 그 효용성이 커서 향사례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투호례가 사대부 문화로 확장되는 전기가 되기도 하였다. 투호례의 심신수양과 인격함양이라는 교육적 효용성은 투호가 사대부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퇴계는 경(敬)공부의 일환으로, 율곡은 심신의 수양과 긴장의 이완을 위한 교육방법론의 하나로 투호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투호례의 특징은 투호회의 결성과 투호례의 대중화를 들 수 있다. 물론 17세기의 투호례는 여전히 상류층의 문화로 유희와 예교가 공존하였다. 이른바 대중적이라는 것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가능한 것이었다. 김두열 『투호아집도』와 신윤복의 <임하투호>는 이러한 변화를 확연히 보여준다. 투호회의 결성은 학파 간의 결연 혹은 문중 간의 결속, 정치적 결속력의 강화 등 단순한 친목을 넘어 그들만의 유대강화가 목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특성은 김좌명과 김두열이 각각 주관한 투호회를 통해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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