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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원준 (인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9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53 - 37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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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의 중국에서는 전후의 새로운 수도를 어느 곳에 건설할 것인지를 두고 활발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다양한 전문가와 지식인, 정치인들이 각자 나름의 근거를 활용하며, 각종 지면을 통하여 자신의 建都論을 제시하였다. 1940년대의 건도논쟁에서는 중국의 국방과 경제, 지리,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논거로 활용되었고,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과 함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근대 국민국가(‘新中國’) 건설의 꿈과 그 구상이 이 논쟁을 통하여 압축적으로 표현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1940년대 건도논쟁의 다양한 논의 중에서, 특히 중국의 역사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건도론의 논거로 활용되었는지 분석하였다. 北京이나 西安을 전후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북방 건도론자들은 대략 세 가지의 역사적 관점에서 ‘신중국’의 수도는 북방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북방에 建都한 왕조만이 중국을 통일하고 장기간의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長治久安’). 이와 달리, 남방에 建都한 왕조는 대체로 분열 상태에서 단명했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둘째, 제국의 판도나 국력으로 볼 때, 북방에 建都한 왕조가 남방에 建都한 왕조보다 대체로 강성했다는 점이다(‘北强南弱’). 중국의 분열기에는 주로 북방 왕조가 남방을 정복하여 중국을 통일하였고, 북방민족이 중국을 침략하여 북부를 점령했을 때도 남방 왕조는 대체로 열세에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수도를 북방 변경에 가까운 곳에 설립하여 외적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때 대체로 제국의 국력이 강성했다는 점이다(‘天子守邊’). 이들은 전후 중국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한 군사 위협은 주로 북방에서 제기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처럼 1940년대 북방 건도론에서는 중국의 ‘과거’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북방 建都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중국의 ‘과거’에 대한 해석과 재구성을 통하여 중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근거로 활용했던 것이다. 현재의 목적을 위하여 과거의 先例를 동원하는 것을 중시했던 중국인의 오랜 역사의식이 1940년대의 건도논쟁에서도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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