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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주현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자료 미술자료 제91호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102 - 129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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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淸院本淸明上河圖〉는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의 張澤瑞의 〈淸明上河圖〉와 仇英의 관지가 있는 랴오닝성박물관 소장 〈청명상하도〉의 도상적 전통을 이어 청대에 그려진 대표적 청명상하도이다.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는 金代 5人, 元代 3人, 明代 5人 등 총 13인의 수장가가 쓴 14개의 발문이 달려 있다. 제발에 드러난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청명상하도〉를 미적, 도상적으로 분석한 시각과, 이를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본 시각이 그것이다. 金代의 관료 張公箹, 시인이었던 酈權, 원대 楊準, 李祁, 명대의 李東陽 등은 〈청명상하도〉의 의미를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하였는데, 이들의 발문에는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 그려진 북송대의 호화로운 변량의 모습을 휘종, 흠종대의 사치와 부패의 결과로 읽어내고 이를 감계로 삼으려했던 시각이 드러난다. 이기는 〈청명상하도〉를 〈無逸圖〉에, 이동양은 〈流民圖〉에 비견하면서 그 감계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청명본청명상하도〉에는 “乾隆 元年 12月 15日 황제의 명을 받들어 陳枚, 孫故, 金昆, 載洪, 程志道가 그리다.”라는 관지가 있어 건륭 원년인 1736년 진매, 손호, 김곤, 대홍, 정지도 5인의 합작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건륭제 『御製詩集初集』에 “옹정6년 그리기 시작하였다.” 는 기록이 있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728년이며 완성된 것이 1736년 12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명본청명상하도〉는 구영의 〈청명상하도〉와 마찬가지로 소주의 풍광을 묘사하였으며, 전체 화면 구성은 물론 세부 묘사 역시 구영본 〈청명상하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청명본청명상하도〉의 전각, 선박, 궁궐 등은 구영의 〈청명상하도〉와 달리 淸代의 요소로 대체되었으며 다툼과 충돌. 걸인의 묘사, 술 취한 문인과 관료들의 권위 과시 등은 새롭게 첨가되거나 구영본보다 강조되어 표현된 요소들이다.
건륭제는 낙빈왕의 제경편을 차용해 쓴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仇英 倣本〉의 제시와 〈淸明易簡圖〉의 발문을 통해 백성의 고통에 무지했던 휘종, 흠종의 사치와 관료의 부패를 언급하였다. 이는 건륭제가 〈청명상하도〉에서 정치적인 맥락을 읽어 내고 이를 시각적 감계로 삼고자 했던, 한족 문인수장가들의 시각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시각을 〈청명본청명상하도〉를 통해 잇고자 하였음을 보여준다.
〈청명본청명상하도〉가 건륭 원년에 완성되었으므로, 이를 황제등극을 경축하기 위한 화권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건륭황제로서는 오히려 앞으로의 통치기간 동안 역사적 과오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다짐과 경계로 화권을 제작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특히 건륭제는 〈청원본〉의 제시를 ‘풍요와 안락을 과시했던 휘종과 흠종에 대한 한탄’으로 끝맺고 있다. 건륭화제가 〈청원본〉을 통해 보고자 했던 것은 ‘앞으로 추구해야할 이상적 태형성세’의 모습이었다기보다는 ‘감계로 삼아야 할 과거의 태평성세’였다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청명상하도〉를 바라보는 수장가의 눈
Ⅲ. 〈청명상하도〉를 바라보는 건륭황제의 눈
Ⅳ. 〈구영본〉의 계승과 도상의 첨삭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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