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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태일 (경남대)
저널정보
근대서지학회 근대서지 근대서지 제23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653 - 723 (7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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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북 시인 박산운을 두고 마련한 첫 실증적 바탕이다. 그이 해적이에서 모자란 점을 깁고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문헌지를 점검, 확정하였다. 논의를 줄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본명이 박인배인 박산운(1921∼1997)은 경남 합천군 적중면 상부리에서 났다. 초계공보를 거쳐 1934년 부산제2상업학교에 입학, 4학년 1학기를 끝으로 왜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노동을 하며 중앙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른바 학병 사태를 맞아 함북 리원광산으로 몸을 피했다. 을유광복 뒤부터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문학 활동을 잇다 1948년 7월 무렵 월북했고 초기 필명 강수재를 썼다. 둘째, 박산운이 낸 것으로 알려진 시집 10권(공저 3권 포함) 가운데 ‘합동시집’ 『시인의 집』은 잘못 적힌 것이다. 북한 기록에 보이는 시집 『승리의 길』이나 ‘장편소설, 산문집’들은 불확실하거나 부풀려진 정보로 여겨진다. 따라서 현재 확인되는 시집은 모두 8권(공저 2권)이다. 그리고 1970, 1980년대와 달리 1990년대 초반 시집 간행이 갑자기 는다. 김정일 집권과 더불어 재발견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일이다. 셋째, 박산운이 남긴 낱글은 시 「거울가치 아는 일을」(1945)을 처음으로 212편을 확인할 수 있다. 월북한 뒤 1949년 1월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이는 ‘남반부’ 출신에다 대학 중퇴 지식인이라는 계층적 결여 조건에도 자리를 온전히 지켰다. 북한 격변기인 1965년 무렵부터 활동이 급격히 줄기 시작해 1970년대, 1980년대에는 사정이 더했다. 그러다 1990년 초반에 복귀한다. 만년에 이르러 박산운은 남녘에 고향을 두고 이른바 ‘수령’ 품에 안긴 채 북녘에서 다함 없을 애국주의를 실천한 대표 시인으로 고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글을 바탕으로 박산운의 삶과 문학을 향한 본격 구명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목차

국문초록
1. 박산운과 합천
2. 간행 낱책 따라잡기
3. 낱글 발표의 흐름
4. 합천과 박산운
Abstract
참고문헌
|자료| 박산운 작품 해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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