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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남아름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308號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05 - 14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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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봉황문(鳳凰紋)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궁중 공예품의 문양과 화본(畫本)의 관계를 밝히고 조선후기 분원(分院)의 새로운 청화백자 제작 특징을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조선시대 봉황의 도상(圖像)은 명(明)으로부터 화본으로 전해졌다. 조선 왕실은 화본을 통해 봉황문의 양식을 규제하는 한편 이를 지속적으로 계승하였다.
1752년 관요(官窯)가 분원리에 고정(固定)되고 1754년 이후 분원에 화원(畫員)이 파견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나 청화백자의 생산량은 점차 증가하였고 화원이 그렸음직한 다양한 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화원을 대체한 화장(畫匠)이 화본을 활용하여 청화백자의 문양을 시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청화백자 제작에 활용되었던 어화본(御畫本)의 기록은 이러한 추론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화본은 사옹원(司饔院) 분원과 타 관아의 관원, 그리고 장인 사이에 협업을 가능케 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조선후기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민간의 청화백자 수요는 급증하였고 이는 1753년 『시폐(市弊)』와 『공폐(貢弊)』의 기록과 사번(私燔)의 성행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화본은 조선 왕실과 사대부가 향유하던 문양을 대중화(大衆化)시키고 공예품의 규격화(規格化)와 정형화(定形化)를 이끌어 내었다. 이와 관련하여 봉황문 청화백자는 화본이 조선후기 분원의 청화백자 제작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공예품과 화본의 봉황문 비교 검토
Ⅲ. 조선후기 봉황문 청화백자에 나타난 화본의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References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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