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仁藤敦史 (日本国立歴史民俗博物館)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14호
발행연도
2020.10
수록면
185 - 21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7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정세를 왜국을 중심으로 개관한 것이다. 전제로 개신정치(改新政治)를 ‘급진적인 고토쿠대왕(孝徳大王)의 개혁’(친당 · 신라파)와 ‘저항세력’인 나카노오오에(中大兄)(친백제파)의 대립으로 평가해서 ‘조화적인 균형외교가 아니라 고토쿠(孝徳)와 나카노오오에(中大兄)를 권력핵으로 하는 두 파벌세력이 길항’하는 분열외교로 해석했다. 그후 고토쿠(孝徳)파의 실각으로 사이메이(斉明) · 덴지(天智)의 백제지지파가 세력을 얻어 백촌강에서의 패배로 이르렀다.
당 · 신라에 대한 방위적 정책을 한 후에 신라와는 고구려 멸망 후인 668년에 교섭을 재개했다. 그러나 견당사 기사의 분석에 따르면 당과는 오오토모황자(大友皇子)가 주도한 오오미조정(近江朝廷) 시기를 제외하면 다이호(大寶) 견당사(遣唐使)까지 군사적인 긴장관계는 완화되지 않았다. 당과 신라의 대립으로 덴지(天智)기 후반에는 왜국에서도 친당 · 백제파와 친신라파의 대립관계가 생겼다. 나카토미노카마타리(中臣鎌足)나 오오아마토황자(大海人皇子)는 친신라파로 생각되고 오오토모황자(大友皇子)는 친당 · 백제파였다. 덴지천황(天智天皇)은 친백제파이었지만 백촌강 패전으로 대당관계 개선에는 소극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덴무(天武)기에 양호했던 신라와의 관계는 지토(持統)기에 악화하고 701년 다이호(大寶) 견당사로 당과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평가된다.

목차

국문초록
1. はじめに -前史の検討-
2. 白村江敗戦後の東アジア情勢
3. 天智期外交関係の分析
4. おわりに
参考文献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001-001555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