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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용철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6輯
발행연도
2020.10
수록면
191 - 21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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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원대 중기의 관료인 고방의 출신과 행적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대원제국 역사 연구를 위한 기본 사료인 正史 『元史』에는 고방에게 따로 열전을 할애하지 않고 그 행적의 일부분만 서술되어 있어 고방에 관한 상세한 사항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원대의 문집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고방의 신도비명과 「高夫人葬記」라는 제목의 記文을 통해『元史』의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고방은 세조 至元 말기부터 관료로서 활약했던 인물이었고, 세조 재위 당시 과거제가 실시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천거를 받아 하급관리에서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集賢院과 중서성에서 주로 활약했던 고방은 제국 조정의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 지방으로 좌천되는 경험을 겪기도 했지만, 이러한 좌천은 오히려 고방이 지방에서 명성을 쌓게 되는 기회로 작용하게 되었다. 중앙과 지방에서 행정 실무를 수행하며 실력을 알린 고방은 인종 황제에 의해 중앙으로 소환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인종이 漢人 관료들을 적극 활용하여 정국을 이끌고자 했던 정책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비록 고방의 모친이 사망하면서 고방은 3년상을 위해 관직을 수행할 수 없었지만, 인종은 고방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고방의 관직 복귀를 압박했다. 하지만 고방은 인종 사망 이후 후원자가 없어진 상황에서 권신 테무데르의 공격을 받아 결국 다시 좌천되기에 이르렀다. 즉, 고방은 원대 중기의 복잡한 정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방은 大名路 출신의 관료였지만, 그 선조들의 家系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발해와 연관이 깊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방의 신도비명에는 고방의 선조들이 원래는 요동에 거주했다가 금 제국에서 활약하면서 점점 중원으로 이주했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다.『元史』에서는 고방과 발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지만, 신도비명과 「高夫人葬記」에서는 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발해 멸망 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중원으로 이주까지 했기 때문에 고방 가문이 발해인의 정체성을 유지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런데도 신도비명에 발해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기록된 그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元史』에 기록된 高昉의 행적
Ⅲ. 高昉의 신도비명 분석을 통한 행적의 재구성
Ⅳ. ‘高夫人葬記’에 보이는 고방의 家系와 행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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