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용성 (영남대학교 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고문화 제59권
발행연도
2002.1
수록면
64 - 87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영남지방의 순장은 각지에 방어적인 성격의 토성의 등장, 도질토기의 발생, 경주식 목곽묘와 김해식 목곽묘의 분화가 발생하는 등 어떤 획기적인 사회변화를 수반하고 있던 시기인 3세기말 4세기초에 발생하여 고총단계에는 신라 중앙인 경주와 지방 고총에 보편적인 장법으로 행해진다. 이후 6세기 신라의 체제 정비를 통한 중앙집권국가로의 출발을 기점으로 해서 점차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순장자를 어떻게 죽였는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단지 순장자의 배치형태는 5개의 형식(복천동형, 경주형, 임당형, 달성형, 양산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바 이 형식은 묘제와 관련해 볼 때 순차적으로 발생해서 유행하고 낙동강 하류, 중류, 경주, 경주의 주변 등으로 지역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 순장을 동반하는 묘의 묘주는 착장유물을 중심으로 한 계층화를 통해 볼 때, 경주의 경우 왕과 왕족, 최고의 귀족 등으로, 지방의 경우 소국단위 또는 별읍단위의 누세대로 계승되는 간층과 그 가족 집단이 된다. 또 경주를 중심으로 볼 때, 경주에서 외부로 향하는 제1의 결절지라고 볼 수 있는 지역(의성, 경산, 대구, 창녕, 양산, 보다 이른 시기의 부산)들의 묘가 그 외 지역들의 묘들에 비해 순장자 수가 많은 특징이 있고 이것은 착장유물과 부합되어 당시 지방의 간층들이 위계화 되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착장유물 등으로 분석한 결과 신라의 경우 노예가 순장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순장자는 모두 근시적 존재인 시동, 시녀, 호위무사, 재산관리자 등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노예가 순장되지 않았음은 일반적으로 노예의 순장이라고 해석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에 배치되는 것으로 당시의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