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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51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5 - 7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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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尹拯)은 소론(少論)의 수장으로 출사에 뜻을 두지 않고 후학양성에 헌신한 인물이다.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존경받았던 선생은 악학(樂學)에 정통하였다. 숙종 조에 장악원의 실무를 담당했던 정3품 장악원정(掌樂院正)의 직책을 제안받았으며, 사후에는 도덕이 널리 알려지고 예악(禮樂)에 밝다 하여 문성(文成)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음악에 관해서는 생애주기에 맞게 일생을 정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몸소 실천했다. 이러한 윤증의 음악 활동은 󰡔명재유고(明齋遺稿)󰡕에 수록된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에도 현재까지 이에 관해 조명한 연구는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윤증의 작품에 나타난 음악론(音樂論)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음악에 내재한 정신을 중요시하며 강조한 내용은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었다. 첫째, 시창(詩唱)이다. 홀로 있을 때는 유봉정사(酉峯亭舍) 옆에 마련한 송단(松壇)에서 시를 노래했다. 교류의 장에서는 󰡔시경(詩經)󰡕을 가창했던 당대의 풍토에서 벗어나 인성을 감화시킬 수 있는 시를 지어 노래하는 것도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경전을 부르며 격식에 치중하기보다는 사특함을 없애기 위한 마음가짐을 공유할 수 있는 음악 문화를 조성하고자 했다. 둘째, 거문고[玄琴]이다. 자연에서 벗과 연주를 감상하며 풍류를 즐겼을 뿐 아니라 당(堂) 안에는 악기를 비치해 두었다. 윤증이 거문고를 소장한 이유는 욕심과 시름을 금(禁)하기 위한 신독(愼獨)의 방편이었다. 정원에 심어 놓은 벽오동에는 무현금(無絃琴)의 가치를 투영(投影)하여 관조하기도 했다. 이렇듯 음악으로 지향했던 바는 아들인 윤행교(尹行敎)와 주고받은 서(書)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사심(邪心)을 버리고 의(義)로써 재단하기 위해서는 금을 타거나 노래하듯이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윤증이 생각한 금가(琴歌)의 목적은 심지(心地)를 안정시켜서 중용(中庸)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으로 해석해보면 음악의 활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쓰임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망국지음(亡國之音)과 난세지음(亂世之音)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곡이 문제가 아니라 방탕한 임금의 행태 때문이다. 윤증은 선비사회에서 음악이 향락에 쓰임을 금기함과 동시에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위해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음악의 효용적 가치가 의(義)를 염두에 둔 수양의 과정에 필요함을 강조하며 개인부터 실천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했다. 음악의 쓰임과 이에 내재한 가치를 바르게 알고 중화(中和)하기 위해 연마한다면 사회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고 여겼다. 더 나아가 예악에 내재한 효(孝) 사상이 발현되도록 후학양성에 집중했다. 예악(禮樂)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 여겼던 윤증의 확고한 의중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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