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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문화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9 - 14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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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기 한국의 산악신앙과 성황신앙을 지역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검토하였다. 역사상의 인물이 산신이나 성황신에 추앙된 사례를 중심으로, 그에 담긴 정치・사회적인 의미의 시기별 변화에 유의하며 그 대세가 드러나도록 정리하였다. 삼국과 통일신라 곧 한국의 고대사회에서는, 중앙에 의한 지방세력 견제나 회유・장악의 측면에서 산악신앙의 존재 의미가 부각되었다. 오악이라든지 감악산신 설인귀의 존재 등이 그것이거니와, 중앙귀족이 산악신앙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무하고 민심을 안정시킴으로써 지방을 원활히 통치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는 게 삼국과 통일신라시기의 대체적인 추세였다. 성황신앙의 경우 일러야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즈음에 들어 비로소 등장하는 바, 산악신앙의 그러한 전개와는 무관하였다. 고려왕조에서는 산악신앙이나 성황신앙이 지역 토착세력의 존재 과시에 내세워지곤 하는 게 보다 일반적이었다. 지역의 토착세력이 성장하고 또 그들이 중앙으로 진출하는 등에 발맞추어, 중앙에 지역사회의 요구를 전달한다든지 혹은 지역 내의 주도권 다툼에서 산신이나 성황신이 앞세워지곤 하였다. 더불어 지역을 주도하는 사회세력의 성쇠가 산악신앙과 성황신앙에 반영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에 들어 산악신앙과 성황신앙은 유교적 예제의 정립과 함께 규제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음사로 지목되어 금지되고 억압당하기 일쑤였다. 다만 향촌에서 吏胥系列과 士族系列의 사이에 전개된 힘겨루기라든지 혹은 산신・성황신으로 추앙된 인물의 후손의 번성 여부에 따라 지역별로 편차가 적지 않았는데, 대개는 유교식화한 제의와 전통적이며 기복적인 그것이 병립 혹은 절충되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갔다. 조선이 유교화되어 갈수록 산악신앙・성황신앙의 위상은 추락하고 그 설 자리는 좁아져 갔다. 거기에 일제의 이른바 미신배척은 결정적 타격을 입혔으며, 그리하여 한국의 다른 민속과 함께 그 전통이 단절되다시피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사회에서는 중앙의 지방통제에 그리고 고려시기에는 지역 토착세력의 존재 과시에 각각 내세워지며, 나름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지닌 채 공공영역의 한 켠을 차지한 가운데 전승되어 오던 산신과 성황신이, 조선왕조의 유교적 예제 정비에 따라 대부분 음사의 대상으로 추락한 끝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아예 한국의 전통에서 추방되다시피 하며 소외되어 잊힌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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