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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19 - 25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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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46년(영조 22)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에 해당하는 紅旗浦와 紅島 일대를 정탐한 「紅島偵探記」에 대하여 정탐을 하게 된 배경과 정탐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정탐의 배경으로는 영조 22년에 청나라와의 압록강 국경 지대에서 발생한 莽牛哨設訊과 退柵에 의한 국경선의 설정 문제, 그리고 당시 북방에 거주하던 磴磴磯가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영조는 校理 嚴瑀를 北關御使로 파견하고, 嚴瑀는 南濟極 등 27명을 두 차례에 걸쳐 紅旗浦와 紅島 일대로 보내 정탐을 해오게 한다. 그 과정에서 磴磴磯에 대한 여러 정보와 함께 당시 청나라가 진행하고 있던 蔘 偸採者의 단속에 의한 유민의 발생과 紅旗浦와 紅島 일대로 도망한 漢人 토벌의 규모와 양상을 정탐하는 데 성공한다. 嚴瑀는 정탐의 결과를 영조에게 보고하고, 영조를 비롯한 조정에서는 당시의 이러한 정황과 지리적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磴磴磯에 대한 논의는 일단락된다. 정탐이 끝난 뒤에 영조는 해당자들에게 포상을 하고, 다음해인 1747년에 청나라에서는 磴磴磯에 들어가 14년을 살았던 두 조선 여인을 잡아 한양으로 보내오는데, 형조에서 심문한 다음 섬으로 유배를 보낸다. 또한 이 정탐의 결과 얻어진 지리 정보는 『海東地圖』의 「西北彼我兩界全圖」를 제작할 때에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정탐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紅島偵探記」는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1) 당시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莽牛哨設訊과 退柵 문제, 磴磴磯 침입의 위기의식을 정탐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하고자 한 노력과 정보 취득 과정을 알 수 있다. 2) 조선시대에 다양하게 전개한 정탐 활동의 진행 과정과 방법, 운용 인원, 정탐 노정, 정탐시에 만났던 사람들, 정탐지의 지리적 정보 등의 제반 사항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3) 지명은 물론 인문 지리적 정보, 언어와 풍속 등을 제공함으로써 해당 지역을 연구하는 주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해당 지역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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