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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미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동서인문학 동서인문학 제58권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145 - 178 (34page)
DOI
10.37498/HSEW.2020.02.5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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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신석기시대 유적지 차탈휘육은 두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주거지로 BC 7400년부터 BC 5200년 사이에 약 3,500명에서 8,000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동쪽 마운드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18겹으로 된 거주지 흔적이 남아 있다. 거기에서 초기 인류의 건축, 종교, 예술과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분화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근처 강의 계절적 범람 때문에 그들은 언덕 위에 보행로없이 조밀하게 집을 쌓아 올렸고, 가족이 죽으면 주거 공간 내에서 매장했다. 차탈휘육에서는 현세적 풍요와 유지를 위해 연대와 평등사회의 구현에 주력했다. 불리한 환경조건은 주거의 불편함과 연대가 주는 안정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연대와 소속감에 대한 강한 의식은 그들의 독특한 매장문화에 나타난다. 그들은 주거 공간 내부에 죽은 가족구성원을 매장하기 전 독수리를 통하여 조장을 한 것으로 보이며, 하악골을 제거하거나 두개골을 재구성하며 소속감을 강조했다. 이 사회는 노년을 우대하고, 동물과 여성을 형상화하고, 특히 야생동물을 활용하여 활력을 얻어 풍요를 구축하려는 문화가 강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예술에서 잘 나타난다. 예술은 차탈휘육인들의 삶 전반에 깊이 관여하여 수공예적 삶이 일상화되어 사람들의 촉각을 발달시켰고, 건물 내부는 그들의 탁월한 감각과 능력으로 다양하게 장식되었다. 다양하게 분화된 예술적 장르와 다채로운 예술적 표현은 특이하고 단조로운 주거형태에 대한 리액션으로 보인다.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 창조의 원동력은 자유롭고 안정된 사회였다. 금속기 시대가 오자 그 토대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천년이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최초의 평등사회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차탈휘육에서의 삶
Ⅳ. 차탈휘육의 예술
Ⅴ.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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