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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화예술연구소 불교문예연구 불교문예연구 제1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41 - 7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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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당(中唐) 시기를 대표하는 문학가 가운데 한 명인 유종원은 사상가이자 개혁을 지향했던 정치가였다. 805년 영정혁신이 실패한 후 좌천되어 뜻을 펴지 못하고 지방을 떠돌다 득의와 실의가 교차된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로 인해 후대의 높은 평가를 받는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었다. 당송팔대가의 일인(一人)이자 탄탄한 문학이론을 갖췄던 그는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주도했고, 여러 문학형식을 활용해 주옥같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불교를 믿었던 유종원은 천태사상을 받아들였으며 천태종 제12세로 기록될 만큼 천태사상 이해에 대단한 경지를 구축했다. 선사상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몇몇 선사(禪師)들의 방종과 일탈, 선문(禪門)의 분파와 분쟁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불교 수행에선 선이 가장 오묘하다.”고 그가 인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선종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선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치국(治國)의 도리로 유학을 가까이했고, 자신을 다스리고자 불교를 멀리하지 않았으며, 고문운동을 주도했고, 불교와 유교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창했던 유종원은 당나라를 대표하는 사대부 가운데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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