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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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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3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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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금강계단이 있어서 예로부터 수계작법이 이루어졌던 대표적 사찰이다. 신라시대 이래 경상도를 대표하는 사찰로서위상이 있었고, 조선후기에는 불·법·승 삼보 중 불보 사찰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특히조선후기 통도사를 경영하며 수행 풍토를 이끌어갔던 그룹은 환성 지안의 문도였다. 환성 지안(1664~1729)은 조선후기 최고의 화엄강백으로서 1724년에 금산사에서화엄대법회를 열었을 때 1400여 명이 운집하였을 정도였다. 이때 수많은 대중이 모인것을 보고 누군가 역도의 우두머리라고 환성대사를 모함하였고, 결국 대사는 제주도로유배 가서 입적하였다. 그 환성대사의 제자인 설송 연초(1676~1750)로부터 이어지는환성 문도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통도사에서 환성 유풍을 계승하였다. 환성대사가 통도사에 주석했던 흔적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유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환성대사가 사용하던 송낙과 환성대사 친필의 시 현판이보관되어 있고, 비림에는 환성대사 찬술의 蠲役復舊碑 등이 있다. 그리고 통도사의 환성 유풍 계승은 影閣에 소장된 76점의 진영과 비림의 승려명이 있는 비석 등을 통해 그환성 문파의 계보가 확인된다. 또 통도사 입구에는 ‘本寺喚惺宗契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등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환성대사 문도들이 조직한 환성종계가 성립되어 있었던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양산시 󰡔토지대장󰡕에는 ‘석환성’ 소유로 기록된 溜地가있다. 이 유지는 환성종계가 통도사 경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인근의 토지를 매입한흔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물과 기록을 통해, 환성대사 문파는 18~19세기 통도사 경영을 주도적으로담당하면서 환성대사의 유풍을 계승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환성대사의 문도들이 스승의 유풍을 계승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환성대사 관련 유물이 남아 전하는것으로 짐작된다. 환성대사가 조선후기 최대의 불교 계파인 청허계를 대표하는 선사였다는 점에서 볼 때 환성 유풍을 계승하는 통도사가 청허계의 사상적 宗院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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