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박근형이라는 작가이자 연출가의 예술적 세계관과 의식 속에 어떠한 주체에 대한 콘셉트가 보이는가 그리고 약 10여년에 걸친 작업 속에 어떤 변화의 징후가 보이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해서 본고는 박근형 작품의 공연분석비평이자, 과도기적 진단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박근형의 작품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그리고 <너무 놀라지마라>에서 나타나는 몸성과 공간성의 연구의 이론적 배경은 그의 연극이 지니는 연극성에 관한 연구이다. 이 때 연극성이란 개념은 몸을 중심으로 한 시간과 공간의 ‘지각과 인지’ 그리고 그것의 ‘기호적’ 관계를 의미한다(Fischer-Lichte a 11-30, 김정숙 17). 이 말은 연극성을 감각체계, 인지체계와 연관한 몸성의 파악에서 밝혀냄을 의미한다. 이 때 몸성이란 몸의 감각체계와 ‘물질적 성격의 총체’를 의미하며, 동시에 몸에 대한 ‘표현성과 반영성’을 내포한다. 몸은 무게, 부피 등의 물리적 차원, 피부, 근육, 땀과 같은 신체적 차원 그리고 움직임이나 자세, 입장, 에너지가 지니는 수행적 차원을 총괄한 의미인 것이다(Fischer-Lichte, Kolesch, Warstat 178-186). 다시 말하면 몸은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으로 인지 가능한 생체적, 물리적 존재의 상태이며 현상이다. 서사행위가 지니는 기호학적 관점과 현상학적 관점이 상호 관계를 이루며 극현실을 만들어간다는 프레임 속에서 몸성을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신체성과 육체성을 포함한 몸성의 개념은 시각적 공간성 뿐만 아니라, 수행적 공간으로서 소리성로 전이되어 나타날 수 있다(Fischer-Lichte b 209). 이러한 개념들을 도구 삼아 이 글에서는 박근형이 연출한 공연들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몸성의 주체가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관한 질문은 바로 극 속에서 형상화된 몸성/공간성의 주체 콘셉트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다. 이것은 극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간의 관계(Konfiguration)와 힘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며, 근본적으로 박근형의 연극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주체는 무엇이며, 이것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박근형의 연극 속에 나타나는 가족 구성원들은 왜 폭력적이거나 분열되고 비틀어져 있는가, 그들의 주체가 한국의 (일상적) 역사, 문화, 사회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으며, 어떤 정체성을 이루는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Es handelt sich in diesem Aufsatz um die theatralische Körperlichkeit und Räumlichkeit der Aufführungen, die von Dramatiker und gleichzeitig Theater Regisseure Park Gŭn-hyŏng inszeniert wurden.
Hier wird die Aufführungsanalyse durchgeführt, wobei untersucht wird, wie sich diese Körperlichkeit mit dem Subjektivität verhält.
Die Untersuchungsergebnisse bestehen darin:Die spezifische Theatralität der Aufführungen entstehen in der Oszillation der Körperlichkeit und der Narrativität.
Die performative Ästhetik bzw. Körperlichkeit des Stückes <Chŏongchunyechan> besteht in der existenzialistische Räumlichkeit, welche auf der Meta Ebene der Theaterkunst hervorgebracht wird. Seine Subjektivität besteht aus den existenzialistischen Verhaltensweisen, die im Stück von den Jugendlichen Menschen und auf der Theaterebene zum Ausdruck gebracht wird.
Die Ästhetik des Stückes <Kyŏongsuk, Kyŏongsukiabuji> besteht in der Kriseninszenierung. Die Krisenzustände werden meistens durch die Lautlichkeit dargestellt, die auch historische Dimension enthält. Es handelt sich hier um die Krise einer Familie und ihrer Geschichte. In dieser Inszenierung kreuzen sich die oral poetische Subjektivität und die sich an die Schrift orientierte Subjektivität durch, wobei die ausgeglichene Perspektive der historischen Geschichte gut zu sehen ist.
Die Ästhetik des Stückes <Nŏmu nolrajimara> besteht in der synästhetischen Atmosphäre, durch die die sozialen Situationen und Menschen in Korea zu reflektieren sind. Die Subjektivität der Figuren sind konstituiert aus dem Mechanismus der postindustriellen Gesellschaft sowie Individuel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