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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연극학회 한국연극학 한국연극학 제1권 제45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87 - 11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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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사시의 본격적인 현대 연극 교류는 1979년에 극단 ‘자유극장’(한국)과 극단 ‘스바루’(일본)에 의한 연극교류로 시작되었다. 본고는 1960년대에서 1979년까지 사이에 실시된 한·일간 현대 연극 교류를 살펴 본 것이다1960년대의 연극 교류는 보다 광범위한 정부 간 문화교류에 포함되어 실시되었으며, 양국 극단에 의한 교류는 거의 없었다.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은 정식으로는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민간 교류란 실시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래도 양국 간에는 연극인 교류가 있었고 일정 정도 정보 교환이 있어 왔다. 그러던 가운데, 1963년부터 1965년까지에 한국 아동 극단 ‘새들’이 일본 방문 공연을 수차례 실시하고 연극 교류의 막을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보다 광범위한 연극 교류로 이어지지 못했다. 1970년대에 일본 극단들이 특정 한국 작품을 상연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에 주목한 결과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자이니치(在日)’에 대한 관심 역시 고조되어, 그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제작/상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사이에 현저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적 상황 만에 주목한 나머지 한국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리고 한국 연극을 ‘군사독재’ ‘분단상황’이란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 일본 극단 ‘후지’가 <봉선화 피는 언덕>(1979)을 상연했다. 이것은 한국인 고아들을 위해 생애를 바치다가 죽은 일본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담’으로 제작되었다. 한국 미디어는 한국인 연기자가 일본 작품에 출연했다는 것과 한국어로 ‘봉선화’를 노래한 것을 강조했다. <봉선화...>는 식민지 시대 한국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지 된 노래였다. 극단 ‘후지’는 공연이 대성공이었다고 했고, 내한 공연을 희망했는데 실현되지 않았다. 그 당시 일본 극단에 의한 내한 공연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극단 자유극장과 극단 스바루에 의한 연극교류는 한국 측의 제안으로 상호 초청/방문 공연으로 실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를 직접 접촉하는 것에 대한 시비가 야기되었다. 스바루는 이러한 한국의 반응을 고려해서 <깊고 푸른 바다(Deep Blue Sea)>( Terence Rattigan)을 상연했다. 한국 극단 자유극장에 의한 일본 공연은 전후 처음에 한국 현대극을 소개하는 기화가 되었다. 극단 자유극장은 한국의 민화를 소재로 한 <무엇이 될꼬 하니>를 상연했다. 한국 사회와 한국 미디어는 이번 교류가 상호 초청/ 방문 공연으로 실행된 것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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