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6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396 - 436 (4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조선시대 전반기의 사찰건축과 사지, 그리고 당시에 남겨진 기문 등을 통해 불교건축과 그 안에 봉안된 불상, 불화,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해졌을 불교의례가 어떤 관계를 지녔는지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우선 불탑을 중심으로 그 뒤에 불전이 배치되던 이전 시기의 가람배치와 달리 불탑이 사라지거나 혹은 불전 뒤에 배치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이것은 마치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법당과 금강계단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탑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일부 기록을 통해서는 사찰의 진입부에 천왕문을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선전기에 이미 점차 천왕문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천왕상은 원래 불전의 불단 위에 봉안되었던 존상인데, 천왕문이라는 별도의 전각이 만들어진 것은 사천왕 신앙의 약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별도의 건물을 만들어 의례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사천왕 신앙의 발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사찰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강당이 사라지면서 법당 옆으로 동·서실, 익실 등이 배치되어 한동안 강당의 역할을 일부 대신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법당 내부에는 기록을 통해 오존불(五尊佛)이 봉안되는 경우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경우 삼신불과 함께 아미타·약사 2존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칠장사 괘불에서와 같이 ‘오불회도’ 등이 남아있어서 조선전반기 불상 봉안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기존에 밝혀진 바와 같이 법당 내부에서 진행되는 의례가 변화하면서 불단이 법당 내부의 중앙에 위치하던 것으로부터 점차 뒤로 물러나게 되었는데, 여기에 덧붙여 본 논문에서는 무위사 극락전의 경우는 요잡의식의 방향에 따라 측벽에 다양한 벽화가 그려졌지만, 불단이 후퇴하고 천정은 우물천정 등으로 막히는 구조가 되면서 점차 건물 건체를 장엄하던 서사적인 구도는 사라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사찰배치는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 불교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지공(指空)의 불교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원대의 라마불교적 성격도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지공은 다양한 다라니를 유포시켰는데, 특히 회암사 입구 부근에 배치된 욕실과 관음전 등은 지공이 번역한 ‘관세음보살시식진언’ 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사리전을 중심으로 정청, 동서방장, 설법전 등이 둘러선 건축배치는 중국 오대산의 현통사와도 유사하여 그러한 라마식 가람배치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보았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6)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