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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6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537 - 56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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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조선전반기 왕공·문인사대부의 묵란화를 고찰하여 묵란화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난초는 古來로 살충과 향기가 갖는 식물학적인 특징으로 인해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후 孔子나 屈原에 의해 도덕과 충정을 겸비한 ‘君子’의 상징으로 고착되었다. 송대 문인들은 회화소재의 뜻과 의미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군자를 상징하던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고목, 石 등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했다. 아울러 이들 화목에 대한 관심은 여러 텍스트와 화보의 출간을 낳았으며, 이로 인해 문인들의 작화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난초에 관해서는 南宋 趙詩庚의 『金漳蘭譜』(1233), 王學貴의 『蘭譜』(1246), 元代 孔克齊의 『(靜斎)至正直記』등의 텍스트가 발행되어 난초의 종류와 재배법 및 그리는 방법까지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었다. 이 책들은 당시 문인들이 추구했던 寫意표현의 정보와 기술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묵란화는 묵죽화와 더불어 기록과 작품을 통해서 보면 어지러운 세상에 정치·사회적으로 충정과 선비의 덕이 강조되던 조선중기와 조선말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이는 중국의 남송말 원초와 명말 청초, 청대후기에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때문에 문인화로서 군자를 상징하는 묵란화는 대부분 유학이 정치적 이념으로 작용됐던 고려말부터 조선전반기에 걸쳐 주자성리학의 실천주체인 왕공·문인사대부에 의해 그려진다. 난초에 대한 인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어왔고, 송원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난초와 묵란화에 대한 관심은 증대되었다. 남송의 조맹견이나 원의 선승화가인 보명의 묵란화에 대한 고려말 조선전반기의 기록을 통해서는 당시 문인들의 묵란화 인식 애호 경향을 살필 수 있다. 또한 당시 묵란화는 화면구성과 포치, 난엽, 난화, 화심 등이 유사해 譜本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많아보였다. 그밖에 군자를 상징하는 蘭竹이 짝이 되게 그려지는 것, 병풍으로 꾸며지는 것 등 역시 이 시기 묵란화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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