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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3 - 9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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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궁궐단청의 자료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 및 창건된 궁궐과 『朝鮮王朝實錄』등에 보이는 사료가 있어 그 이전에 비해 자료가 풍부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후기의 궁궐 목조건축도 仁祖反正과 李适의 亂 등으로 인한 화재로 昌德宮 敦化門·宣政殿 · 舊璿源殿 과 昌慶宮 明政殿·明政門·弘化門 그리고 慶熙宮 崇政殿 · 興化門 등의 17세기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후기에서도 제3기인 순조·순종 때에 중건된 건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일제의 침략을 겪으면서 철저히 궁궐이 변형되고 훼손되어 그 전모를 정확히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궁궐단청의 형식도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을 원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사료되어 궁궐단청에 대한 종합적인 정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 논문의 주제인 17세기 궁궐 목조건물에 나타난 단청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궁궐단청의 형식과 특징을 살펴보고 동시기의 사찰단청 등을 비교하여 17세기 단청 형식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조선후기 17세기 궁궐단청의 형식을 찾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17세기 궁궐 단청을 정리하면 조선시대에는 궁궐 외에 진채단청을 하는 것에 대하여 강력히 제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궁궐 내에서도 정전이나 편전 이외에 진채단청을 행하는 것은 왕에게 윤허를 받아 처리하는 것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단청에 대한 규정이 있어 궁궐의 중요한 전각은 진채단청을 하였고 그 외의 전각에는 박채단청을 하였던 점과 중국에서 수입한 안료는 진채단청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에 중건 및 창건된 궁궐 목조건물 중 창경궁 명정전·명정문과 창경궁 선정전의 단청이 17세기의 단청으로 파악되며 17세기 사찰단청에서 보이는 머리초 문양과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또 17세기 이후에 건립된 다른 궁궐 목조건물의 단청과 비교를 통해 그 시기가 오래된 단청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궁궐 단청의 특징은 첫째로 금모로단청의 형식이지만 금문을 머리초의 직휘부분이나 창방·평방 뺄목의 부리와 같이 면적이 작은 독립부재에 사용하였으며 둘째는 청색과 녹색의 연화를 주문양으로 사용하였고 셋째는 휘부분에서 늘휘 형식의 1휘이거나 휘가 없이 쇠첩부분만을 표현하고 있다. 넷째는 창경궁 명정전·명정문에서는 쇠첩과 색붙임이 연결되어 있고, 다섯째는 머리초에서 속녹화가 없으며 겉곱팽이의 표현을 일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항아리의 위치가 석류 위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여섯째 청색이 다른 곳의 단청에서 보다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일곱째는 공포부에는 긋기로 표현하는데 첨차뱃바닥의 긋기 표현에서 뱃바닥 변을 연결하는 ‘ㄷ’자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창경궁 명정전 당가의 평방 뒷목과 창덕궁 선정전 평방 뒷목에 금문이 시문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7세기 궁궐단청을 고찰하면서 단확의 규정이 있는 궁궐단청이 건물의 중요도에 따른 단청의 형식을 달리하고 있음을 볼 때 현재 궁궐 정전에 행해진 단청은 궁궐 정전의 중건시기의 시대적 상황과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내용, 그리고 궁궐 정전 이외의 건물에 행해진 단청의 형식과 비교했을 때 금모로단청을 궁궐 정전에 적용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하며 왕실의 권위와 위계에 맞는 금단청을 궁궐 정전에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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