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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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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동남아학회 동남아시아연구 동남아시아연구 제25권 제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25 - 167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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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메콩 델타의 크메르인들이 응우옌 왕조 건설에 어떤 공헌을 했는가를 검토한다. 델타에 있는 여러 크메르 공동체 중에 필자는 짜빈 성의 크메르인들을 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친 베트남 내전 기간, 그리고 통일 후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영향력 확대 시기에 짜빈 출신 크메르 병사들은 응우옌푹아인 군대의 선봉을 담당했다. 필자는 짜빈의 명칭과 위치 비정 작업으로 본문 제1장을 시작한다. 스록 쁘레아 뜨라빵(또는 쁘라스 뜨라빵)이란 이름으로 짜빈의 크메르인은 베트남 조정이 지배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18세기 말까지 캄보디아의 한 스록으로 자율성을 유지했다. 쁘레아 뜨라빵은 ‘연못의 부처’ 또는 ‘신성한 연못’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짜빈이 갖고 있던 불교 전통을 상징했다. 응우옌푹아인은 짜빈 크메르인을 떠이썬과의 싸움에 동원했다. 이들은 ‘태국 군대’라는 의미를 갖는 ‘섬병둔’으로 조직되었다. 이들의 지휘관 응우옌반똔은 짜빈 출신의 크메르인으로서 응우옌푹아인이 1784, 1785 두 차례에 걸쳐 방콕으로 망명했을 때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1787년 방콕을 떠나 메콩 델타로 돌아온 응우옌푹아인은 응우옌반똔에게 짜빈 크메르인을 섬병둔으로 조직하게 했다. 제2장은 응우옌푹아인의 쟈딘군과 떠이썬 군대 사이에서 전개된 내전에서 크메르 병사들의 활동을 다룬다. 크메르 병사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들은 쟈딘 군대 일원으로서 북쪽으로 진군했다. 그들은 전방에 배치되었고 그들의 활동은 응우옌푹아인을 항상 만족시켰다. 필자는 짜빈의 병사들이 내전 사상 가장 유명했던 빈딘성 전투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밝혀냈다. 떠이썬 군대가 2년 간 포위하고 있던 빈딘성 안에서 크메르 병사들은 보따인 장군의 지휘 하에 분투하고 있었다. 빈딘 전투 이후 크메르 병사들은 북으로 후에까지 이동했다. 비록 증거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조심스럽게 필자는 이들이 응우옌푹아인의 군사들과 함께 탕롱까지 올라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캄보디아 통제와 관련된 짜빈 크메르 병사의 활동은 제3장에서 논의된다. 내전이 끝나자마자, 크메르 병사들은 그들의 출신지인 짜빈을 지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짜온에 주둔했다. 이에 더해 크메르 병사들은 응우옌 왕조의 군대가 캄보디아로 들어가기 위해 국경을 넘을 때마다 주력군으로 활용되었다. 이들의 작전 범위는 캄보디아의 수도였던 프놈펜뿐 아니라 그 북쪽으로 우동, 로벡까지를 포괄했다. 프놈펜의 왕궁에서 캄보디아 왕 앙짠을 호위하는 임무까지도 그들에게 맡겨졌다. 캄보디아를 통제하기 위해서 국경 지대인 쩌우독에 군사기지가 만들어지자 크메르 병사들은 이곳의 주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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