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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0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95 - 32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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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후반기에는 현존하는 5대 궁궐이 모두 존재하였다. 이 가운데 조선전기 태조대에 건립된 景福宮, 昌德宮, 昌慶宮은 조선전기인 태조대, 태종대, 성종대에 정궁, 이궁, 대비궁이라는 각기 다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모두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 가운데 경복궁은 소실된 지 270여 년만인 1865년(고종 3)에야 중건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으므로, 경복궁이 왕궁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안 선조-광해군대에 재건된 창덕궁과 창경궁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 두 궁궐의 건립 목적은 서로 달랐지만 기능상의 이유로 위치가 연접해 있었기 때문에, 조선후반기에 재위한 임금들은 두 궁을 하나의 궁궐처럼 운영하였다. 조선전기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을 ‘兩闕’로 부르고 왕실과 권부가 옮겨 다니면서 정치를 함으로써 상호보완적인 시설 운영이 이루어졌다면, 조선후기에는 창덕궁과 경희궁이 양궐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때 창덕궁을 東闕로 부르거나, 경희궁을 西闕로 불렀는가 하면 합쳐서 東西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北闕’이라는 명칭이 임금의 時御所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여 경복궁 중건 이전의 창덕궁, 중건 이후의 경복궁은 물론 중국 황제의 궁궐을 가리키는 데 쓰인 것과 달리, 경복궁 서쪽에 자리 잡은 서궐에 대하여 동쪽에 자리 잡은 두 궁궐을 ‘동궐’로 불렀다. 이 글에서는 동궐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먼저 조선후반기에 동궐에서 일어난 건축 造營史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서, 이 가운데 제2기에 포함되는 正祖 시기를 중심으로 궁궐의 운영 방식을 침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정조는 재위 기간이 매우 길었던 숙종이나 영조가 양궐을 오가며 정치를 펼쳤던 것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이루어진 동궐에서 자신의 이상과 정치적 구상에 맞추어 두 궁을 개조해 나갔다. 재위 24년 동안 그가 벌인 궁궐 조영 활동은 경희궁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은 동궐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동궐 곳곳을 그가 바라던 탕평 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현실의 무대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무대를 열심히 운영하는 정조의 모습을 동궐에서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정조 시대의 기록을 천착하노라면 창덕궁과 창경궁이 정조의 궁궐 운영 이후 급속하게 하나의 궁궐로 통합되어 가는 양상을 살피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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