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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1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313 - 33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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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도는 중국 한나라에서 시작하여 남북조시대에 걸쳐 고구려에 전래된 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에서는 사신도를 고분벽화 널방의 중심에 독립적인 주제로 격상시켰다는 점에 고구려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 사신도가 독립적인 벽화의 주제로 사용된 예가 알려지지 않았고, 인물풍속도와 조합을 이루거나 부수적인 제재로 사용되었다. 고구려고분벽화 사신도와 중국 고분벽화 사신도의 관계에 대해서 그동안 연구에서는 주로 남조(南朝)의 영향에 대해 주목했고, 일부 북조의 영향에 대해 거론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북조, 즉 동위(東魏)와 북제(北齊)시기의 고분벽화와 고구려고분 사신도 벽화 중 진파리1, 4호분과 강서중・대묘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남조에는 사신이 그려진 고분벽화가 없고 화상전으로 표현되었지만, 북조에서는 비록 인물풍속도와 함께 그려졌지만 동서남북의 사방에 사신이 배치되는 사신도의 무덤이 존재한다. 아울러 고구려고분벽화 사신도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들은 남조뿐만 아니라 동위 및 북제, 서위 등 당시 동아시아에 유행한 보편적인 화풍이고, 이를 고구려에서 수용하여 자기화했는데, 제작시기로 보면 5-6세기 남조보다 6세기 중엽 이후 북조와 더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구려고분벽화 사신도의 원류를 따진다면, 남조 더 나아가 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는 한대부터 남북조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전통의 축적으로 이루어졌고, 북조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북조식으로 각색하여 북조 양식을 정립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사신도벽화는 남조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남조의 양식이 북조식으로 재창출된 ‘북조화된 남조 양식’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고구려고분벽화 사신도와 북조 고분벽화와 비교를 통해서 본 편년의 문제는 몇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주작도의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진파리고분과 강서중, 대묘는 적어도 고적회락묘의 제작연대인 562년 이후, 즉 6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다룬 고구려고분벽화 사신도의 경우, 양식비교를 통해 볼 때 진파리고분이 가장 제작시기가 빠르고, 그 다음이 강서대묘, 그리고 가장 늦은 것이 강서중묘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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