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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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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한중국학회 중국학 중국학 제33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31 - 248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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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정치적 분위기가 극도로 부패하고 공포스러웠으며 禮敎가 뿌리 깊은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일반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신변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으나 혹자는 양심을 속이고 태평성대인 것처럼 은폐하여 통치자들의 공덕을 칭송하였으며, 혹자는 현실에 대한 냉담한 태도로 현실을 묵과하였는데 인격은 타락하고 비열하였다. 이런 상황은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명나라 말기는 정치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너그러웠고 언론도 비교적 자유로워 모두가 입을 다물고 감히 발언하지 못하던 형국이 타파되었고, 일부 지각 있고 개성 있으며 현실과 禮敎를 감히 직언으로 규탄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李贽는 이 중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으로 南宋 후기부터 최고 통치자들의 의식 형태가 되어버린“程朱理学”과 천여 년 간 줄곧 사람들의 신봉을 받아온 공맹사상을 맹렬히 공격하였으며, 권위주의와 봉건계급사회를 부정하였다. 그리고 道學家의 위선적이고 추한 모습을 가차 없이 暴露하였으며,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시비를 뒤집고, 개성해방을 강렬하게 호소하였다. 거짓 없고 순수한 동심으로 사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남에게 의탁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격을 추구하였다. 그 비판문에 자주“以子之矛、攻子之盾(그 사람의 창으로 그 사람의 방패를 뚫다)”라는 수법을 능숙히 활용하였으며 주로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때론 우회적으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고“偏激(극단적)”인 비유를 좋아하였는데 문투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신랄하고 예리하며 강건하였다. 품위와 우아함을 숭상하던 시대의 심미적인 풍토에 강한 충격을 주었고 그 영향 또한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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