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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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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중국학논총 제55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15 - 132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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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에 대해 고려 전기인 ‘북송 시대’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고려 말기인 원나라 때에 안향(安珦)에 의해서 도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특정 시기에 특정 인물에 의해서 ‘도입’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람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아래 지포(止浦) 김구(金坵)야말로 성리학 도입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 논증하고자 한다. 우선 김구가 당시 무신정권의 핵심인물로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항(崔沆)이 원각경(圓覺經) 목판을 새기는 일을 추진하자 그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그가 낡은 불교를 버리고 유학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어서, 옛 사람들은 이름과 자(字)와 호(號)에 반드시 지향하는 바의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김구의 이름과 자와 호를 분석한 결과 그 안에 유학부흥의 강한 신념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외에, 김구의 아들 김여우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머무르는 동안의 행적을 통해 그 또한 성리학 도입에 일조한 인물임을 확인했다. 김구의 제4子 金承印이 우리나라 최초로 강릉에 향교를 건립한 인물이라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김구와 그의 아들들이 다 유학 부흥과 성리학 도입에 남다른 노력을 하였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김구는 안향(安珦)보다 30년 이상 먼저 고려에 성리학이 유입되게 하는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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